[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48)] 자고하지 말고 끝까지 자기를 지키라

등록날짜 [ 2014-11-24 11:56:29 ]

교만한 자는 깨닫지도 못하고 두려워하지도 않아
사단의 앞잡이가 되지 말고 자신을 늘 돌아봐야

누가복음 15장에 등장하는 탕자는 매우 자고(自高)하고 교만했습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재산 중 자신에게 돌아올 분깃을 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아직 자립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탕자는 자신을 과신하고 아버지를 조르고 졸라서 결국 자기 몫의 유산을 상속받자 며칠만에 그것을 모조리 챙겨 멀리 타국으로 가 버렸습니다.

아버지를 떠나서 살 수 없으면서도 스스로 과대평가한, 참으로 자고하고, 교만하고, 거만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더니 먼 나라에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창기와 더불어 모조리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얼마 안 가서 들에서 돼지를 치며 돼지 먹이인 쥐엄열매로도 허기진 배를 채우지 못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제야 탕자는 울면서 회개했습니다.

자신이 자고하고 교만했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탕자처럼 자고하고 교만한 자는 행복이 가득한 아버지 집을 박차고 나가 버립니다. 행복한 위치에서 스스로 벗어납니다.

자고한 자는 결국 파멸한다
시편 73편을 보면, 당시 찬양대장의 위치에 있었던 아삽은 악인이 형통한 모습을 보고 이를 질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삽의 눈에는 악인들이 항상 평안하고 재물도 많고 죽을 때 고통도 없는 것 같고 건강하고 고난도 없고 재앙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당했다고 고백합니다. 악인의 행동이 부러운 나머지 ‘나도 저렇게 형통하고 잘살아 봤으면 좋겠다’고 한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아삽은 악인의 결국을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시73:18~19).

아삽은 이렇게 자고한 자의 심판이 두렵고 무섭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너는 자고하지 말라, 교만하지 말라”며 끌어내리십니다.

아삽이 벌이는 일마다 안 되었던 것도 하나님께서 늘 끌어내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고하고 교만한 자를 하나님께서 끌어내리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더 무섭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수차례 권면하다 듣지 않으면 내버리십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1절에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고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높은 구름 위에서, 뭇별 위에서 하나님과 비기리라 했던 사단이 추락해 영원히 지옥 형벌을 받을 구제불능의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사단의 앞잡이가 되어 자고하지 말고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바댜 선지자를 통해 자고한 이들에게 경고했습니다.

“내가 너를 열국 중에 미약하게 하였으므로 네가 크게 멸시를 받느니라 바위 틈에 거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중심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너의 중심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리라”(옵1:2~4).

이 경고를 보면 자기중심의 교만이 자신을 속인다는 것입니다. 실제 자신은 그렇지 못한 존재인데 스스로 과대평가한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를 반드시 끌어내리십니다. 자고한 자를 하나님은 절대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3절에서는 주님께서 자고하는 가버나움 사람들에게 강력히 경고하셨습니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하늘까지 높아지면 음부까지 낮아진다.’ 이 말씀은 곧 자기가 높아진 만큼 비례하여 낮아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낮춰 버리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심판하여 타의로 낮아지지 말고, 우리 스스로 겸손히 내려가야 합니다. 스스로 내려가면 하나님이 끌어올려 높여 주시지만 자고하여 올라가면 하나님이 끌어내리십니다.

주님처럼 겸손하여 섬기라
또 주님께서는 스스로 높아져서 문안받으려 하지 말고, 잔치의 상석에 앉지도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막12:38~39).

문안 받을 만한 자격도 없고 상석에 앉을 만한 자격도 없는 자들이 스스로 자격이 있는 줄 알고 있으니 주님이 보실 때 얼마나 자고하고 거만하고 오만불손하여 되지 못하고 된 체하는 모습이겠습니까?

그러면서 주님께서는 “그가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자고하는 자와 교만한 자가 받을 심판의 무서움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고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근본 하나님인 분이시나 자기를 낮춰 겸손하셨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주님의 겸손입니다. 절대자이신 주님께서 사람의 형체를 가져 죽기까지 우리를 섬기며 하나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 과연 주님처럼 우리가 낮아질 수 있을까요?

특히 직분을 맡은 자들은 더욱 겸손히 낮아져야 합니다. 직분은 높아지라고 준 것이 아닙니다. 주님처럼 낮아지고 겸손해서 그 직분으로 모든 사람을 섬기라고 준 것입니다.

우리는 자고하여 내 행복의 자리를 뺏기지 말고, 또 자고해서 그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도록 끝까지 주님이 원하는 겸손한 자리에서 복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1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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