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03-17 11:01:48 ]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참혹한 지옥 형벌에서 구원받은 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옥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받아들이지 못한 자가 가는 곳입니다. 세세토록 고통과 괴로움만 당하는 지옥!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지옥! 우리는 절대 그곳에 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옥의 멸망에서 벗어난 감격이 있는 사람은 지옥을 생각하며 전도하게 됩니다. 오직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이 하나님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하기까지 하신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인본주의로 제한하지 않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사랑의 가치를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의 가치를 오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에는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는 있어도, 남을 살리기 위해 자기 자식을 죽이는 부모는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인간을 살리기 위해 자기 아들을 죽는 일에 내어놓으셨습니다.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사랑의 분량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자기 독생자를 주셔서 인간을 살리려는 사랑을 나타내고 실천할 수 있으셨을까요? 아무리 생각하고 주판을 놓고 계산을 해 보아도 측량이 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큰 사랑은 오직 믿음으로만, 체험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체험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의 분량을 알고 믿는 자만이 체험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무질서는, 우리가 입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면서 그가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은 받아들이지 않는 데에서 비롯하는 것입니다.
쨍쨍 내리쬐는 태양 아래 신자도 있고 불신자도 있습니다. 그 태양 빛과 같은 일반적인 은혜는 누구나 다 같이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영혼에 미치는 영적인 사랑은 믿고 받아들여야만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왔으나 홍해바다가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뒤에는 애굽 군사,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자연 섭리 속에서 모세를 원망했습니다(출14:10~12).
그러나 모세는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3~14)고 말하며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홍해 앞으로 지팡이를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바다가 갈라지면서 물은 좌우에 벽이 되었고, 바다 바닥은 마른 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홍해 속에 숨겨진 대로를 여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 위대한 축복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가야 할 길을 이미 홍해 속에 마른 땅으로 예비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는 이미 길이 준비되어 있으니, 우리는 어떤 일에도 원망하지 말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제한 없는 복을 누리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홍해 바다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요행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애굽 군사가 말을 타고 창과 칼로 이스라엘 백성을 죽이기 위해 노도같이 달려드는 그 현장을 어찌 피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지만, 하나님은 운명을 파괴해 버리시고 살길을 열어 주시는 분입니다.
가인은 동생인 아벨의 제사만이 하나님께 상달되고 자기가 제사한 것은 상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동생을 시기 질투하여 돌로 쳐 죽인 후에 암매장했습니다(창4:3~8).
가장 무질서한 행위는 바로 살인(殺人)입니다. 이 얼마나 끔찍한 가정의 파탄입니까? 최근에 사랑하는 어린 자녀가 실종된 뒤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와 부모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갈기갈기 찢어놓은 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그 부모의 얼굴에 언제 다시 미소가 피어날 수 있을까요? 바로 자기 순간의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사랑이 없기 때문에 그런 끔찍한 사건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이 사랑으로 충만하다면 아마도 법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법이 강화된다는 것은 그만큼 무질서하고 사랑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법을 왜 만드셨을까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 주시기 위해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곧바로 모든 관계와 질서가 파괴되고 마는 것입니다.
가정에는 가정의 질서가 있고, 사회에는 사회의 질서가 있고, 교회에는 교회의 질서가 있습니다. 질서가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이 서로 하나 되어야 합니다. 아들을 죽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 때 하나님과의 질서가 유지되고, 지옥 가는 사람의 불쌍한 사정을 알 때 전도하여 그와의 질서를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혼돈과 술수와 거짓과 살인과 정욕이 판치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질서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질서를 유지하도록 말씀을 주시고 아들을 보내시고 성령을 보내셨으니 우리는 평생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질서 안에서 말씀 따라 성령의 인도로 무제한의 행복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계속>
『제한 없는 열애』
윤석전 목사 著 / 연세말씀사
위 글은 교회신문 <42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