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64)] 마음이 부패한 자는 영원히 구제 불능이다

등록날짜 [ 2015-03-24 13:12:50 ]

진리를 대적하고, 믿음에서 떠난 자는 돌이킬 수 없어
이단에 속한 자와는 영혼의 때를 위해서라도 멀리해야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저희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들이라”(딤후3:8). 이 말씀으로 계속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육신의 소욕
애굽 술객(術客)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처럼 우리는 진리를 대적해서는 안 됩니다(출7:8~12). 하지만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시기, 질투, 불만, 불평, 자아, 아집, 고집 따위 기질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얼마나 대적하는지 모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7절에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소욕이 육신의 소욕을 대적하여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육신의 소욕이 성령의 소욕을 거슬러 대적할 때 가장 마음 아파하시고 탄식하십니다. 성령과 육신의 소욕이 대적관계라면, 육신의 소욕이 얼마나 인간을 영육 간에 망하게 하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소욕을 대적하는 육신의 소욕은 하나님의 원수요, 인간의 원수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소욕이 항상 성령 하나님의 거룩한 소욕을 대적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육신의 소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유의하여 주시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주님 뜻이라면 무엇이든지 “아멘” 해야 합니다. “아멘”은 “나는 주님의 뜻과 진리에 동의합니다. 나는 주님과 같은 편입니다”라고 강력하게 시인하고 주장하는 믿음의 행동의 출발입니다.

‘대적(對敵)’은 원수끼리 하는 짓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속여 선악과를 먹게 한 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

장차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대적 마귀를 멸하신다는 예언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앞세워 그의 능력으로 육신의 소욕을 대적해서 이겨야 합니다. 사람들은 마귀가 육신의 소욕을 이용해 인간을 제멋대로 지배한다는 영적 지식이 없기에 마귀에게 종노릇하는 줄도 모르고 얼마나 육신의 소욕대로 방종하고 방황하며 사는지 모릅니다.

육신의 소욕이 강하여 성령을 거스르고 무시하고 대적하는 자는 곧 믿음에서는 버리운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대적하고, 방해하여 진리가 나타나지 못하도록 하는 육신의 소욕을 이용한 마귀역사를 막아야 합니다. 진리를 대적하며 육신의 소욕에 사로잡힌 자는 진리라는 무한한 지식 안에 절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마음이 부패한 자
이처럼 진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을 사도 바울은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부패했다’는 말은 마음이 썩었다, 회생 불능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통해서 어떤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기도 합니다. 만약 마음이 썩었다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마음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생선을 사다 놨는데 썩었다면 영양 면이나 입맛을 돋우는 면으로 제 구실을 못합니다. 썩은 냄새만 진동할 뿐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내다 버려야 합니다. 이와 똑같이 마음이 썩어 부패하면 사람으로서 온전한 기능을 상실했으므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그들이 육신을 마감할 때 가는 곳이 바로 지옥 불못입니다.

마음이 부패한 사람은 하나님께 다시 돌아올 기능을 모두 상실했습니다. 마음의 부패는 가장 무서운 저주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히브리서 6장 4~절에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타락한’이라는 말은 ‘부패한’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쓰입니다. 이런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즉 다시는 새롭게 할 수 없을 지경까지 완전히 부패했기에 구제 불능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부패한 행위는 하나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보이는 행위라고 했습니다.

부패한 자를 멀리하라
‘부패’는 이렇게 무섭습니다. 부패한 자는 하나님께서도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으니 참으로 난감합니다. 이 말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실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인격적으로 절대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서 부패했기 때문에 하나님도 새롭게 할 수 없으시다는 말입니다.

부패는 다른 사람에게 전염됩니다. 타락한 사람, 부패한 사람과 같이 있으면 자신도 부패해집니다. 악한 영이 역사하는 사람에게 동조하면 같이 망하고 맙니다. 부패한 사람과 친한 사람은 금세 영적인 영향을 받아 똑같아집니다.

우리는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그가 진리 밖으로 나갔다면 결단코 그에게서 돌아서야 합니다.

성경은 이런 자들에게서 떠나라(롬16:17~18), 사귀지도 말고 한 밥상에서 먹지도 말라고 경고했습니다(고전5:11). 또 이단에 속한 자는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고 멀리하라고 했습니다(요이10, 딛3:10). 어떻게 보면 사랑이 없는 냉정한 태도 같으나 이것이 내 영혼을 살리고 보전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뜻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2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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