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04-06 11:49:12 ]
내가 먼저 대접받기보다 남을 먼저 대접하고 섬길 수 있어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하나님의 사랑은 알면 아는 만큼 경험하며 믿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것은 사랑의 절정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누구에게나 주신 것이니 믿음으로 소유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것일까요? 주의 종의 입술을 통하여 예배에 빠지지 말고 말씀 듣고 은혜받고, 기도하여 응답받고, 신앙생활 잘해서 축복받으라고 아무리 말해도 움직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도, 주의 종의 사랑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앞에 압도당한 자만이 사랑의 분량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고도 그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큰 문제가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나눠 주어야 합니다.
사랑은 참으로 매력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더 넓은 매력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바다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물고기와 수초가 있습니다. 바다는 무엇이든지 품고 어떤 것도 제한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사랑은 제한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바다와 같이 끝없이 넓고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핵무기를 가진 자보다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가진 자가 더 큰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핵무기는 세상을 죽이나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살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 어떤 지식보다 가치 있는 위대한 사랑,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품을 수 있는 사랑, 바울처럼 세계의 영혼을 품을 수 있는 사랑, 수많은 영혼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랑,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는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기보다 먼저 남을 대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봄에 씨를 뿌려야 가을에 거둘 수 있듯이, 내가 먼저 남을 사랑해야 나도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씨 뿌리지 않고 거두려 하듯 남을 사랑하지는 않고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는 자도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자기가 받은 한 달란트를 그대로 내놓았을 때 주인으로부터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은행에 넣어 두어 이자라도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주님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분이 아닙니다. 심은 것을 그대로 거두시는 분입니다(마25:24~27).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마25:24~27)
만약 당신을 섭섭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이 정말 그 사람을 사랑했는지 한번 뒤돌아보고 당신이 섭섭한 만큼이 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 부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받으려고만 하는 근성이 가득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도 달라는 것 일색입니다. 주님께 드린다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달라고만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기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주님, 내가 주님께 무엇을 해 드릴까요? 어떻게 해야 주님이 기쁘시겠습니까? 주님이 무엇을 명령하시든지 거절하지 않겠사오니 제가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까요? 오늘도 찬양하기 원합니다. 감사하기 원합니다. 예배하기 원합니다. 주님께 영광 돌리기 원합니다. 주님께 나의 마음을 드리기 원합니다.”
이런 사람이 이웃을 대접하고 섬길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린 아기는 항상 엄마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합니다. 자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해 달라는 것을 울음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면 엄마는 아기의 요구가 무엇인지 찾아내어 그 요구를 충족해 줍니다. 그러나 그가 성장해서 철이 들면 부모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채워 드리게 됩니다. 주님 앞에 우리는 어떤 모습입니까? 어린 아기처럼 손을 내밀고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라며 달라고만 하지는 않습니까? 물론 우리는 주님께 구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고 말씀하셨으니, 믿음으로 구하되 사랑 안에서 베풀기 위해서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사랑이 없다며 떠납니다. 그렇다면 그에게도 사랑이 없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가 썩었다며 떠납니다. 그렇다면 그가 생명과 소금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가 어둡다고 떠납니다. 그렇다면 그는 빛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교회라면 사랑이 있는 자기가 필요한 것이고, 교회가 썩었다면 생명과 소금인 그가 필요하고, 교회가 어둡다면 빛인 그 사람이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도 똑같이 사랑이 없고, 소금과 빛이 아니기에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에게 섬김을 받기보다 먼저 섬기는 사람이 됩시다.
주님을 대접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한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제한 없이 주실 것입니다. 대접을 하면 대접을 받는다고 했으니 주님을 대접하면 주님께 대접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며 주님의 사랑을 받는 비결입니다. <계속>
『제한 없는 열애』
윤석전 목사 著 / 연세말씀사
위 글은 교회신문 <42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