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04-13 13:22:25 ]
작은 은혜를 입어도 보답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성령으로 나타난 큰 사랑을 이웃에게 꼭 나눠 줘야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22:39).
주님은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말씀하신 주님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통스럽고 어려워도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도 사랑하십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으며 주님의 관심 속에 사는 것을 최고의 기업으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합시다. 이웃을 사랑합시다. 사랑하는 만큼 얻게 될 것입니다.
사랑의 조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
주님과 나의 사랑이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주님은 즉각 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내 안에 모신 성령을 사랑해야 합니다. 성령을 사랑할 때 나타나는 첫 번째 열매가 사랑이라고 했으니 그 사랑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거머리처럼 남의 것만 빨아먹고 자기의 것은 절대로 주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묘한 방법을 동원해서 돈 있는 자에게 투자하게 해 놓고 그 돈만 챙겨서 달아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믿음을 바탕으로 동업(同業)을 시작했다가 신의를 저버리고 사기를 치는 지인(知人)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이기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웃을 위해 희생과 사랑으로 섬기고 베풀 때 주님께서는 영원한 것으로 보상하십니다.
아무리 작은 은혜를 입어도 보답하고 싶은 것이 대접받은 자의 당연한 인격입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힘과 자원은 성령 충만함으로 제한 없이 생산됩니다. 성령으로 생산되는 사랑을 이웃에게 마음껏 나눠주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웃을 계속 사랑하다가도 ‘저 사람은 사랑해도 소용없어. 사랑을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철면피구나’ 하며 이웃을 판단하기 시작하면 사랑은 중단되고 맙니다. 땅에서 사랑하고 받지 못하면 하늘에서 주신다고 했으므로 사랑으로 베푼 것은 결코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확실한 진리가 있는데 무엇 때문에 사랑하지 않습니까? 세상에서의 사랑은 손해 볼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베푼 사랑은 절대로 손해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갚으심을 믿고 이웃에게 제한 없이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리터의 물을 담을 수 있는 컵이 있다고 합시다. 담을 수 있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물이 담기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이론이 아닙니다. 행동입니다. 성경 역시 이론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나타내사 실천하신 역사입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경험의 가치
세상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가치의 기준을 결정합니다. 어떤 사람은 가장 큰 가치를 건강에 두고, 어떤 사람은 명예에 두고, 어떤 사람은 지식에 두고, 어떤 사람은 돈에 두고, 어떤 사람은 권력에 두는 등 가치 기준은 매우 다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최고의 가치를 사랑으로 정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위대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랑이 아니라면 영혼의 때에 가서는 무용지물이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존재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사랑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에 따라 그것을 표출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아무리 값비싼 그릇이라고 해도 그 그릇 안에 담긴 내용물이 더럽다면 그릇이 아까울 뿐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잘생기고 허우대가 멀쩡해도 하는 행동이 어리석고 미련하다면 인물이 아까울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담고 있어야 우리 자신의 가치가 상승합니다.
주님은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8:36). 그런데 과연 우리가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사실에 대하여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살아갑니까? 만약 그러하다면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론이 아닌 실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막8:36).
사랑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만약 사랑을 이론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외식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마23: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외식한다는 말은, 전혀 줄 수 없는 자가 주는 것처럼 이론만 근사하고, 갖지 못한 자가 가진 척하고 알지 못하는 자가 아는 척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기만하고 하나님을 기만하고 수많은 사람을 기만하는 잘못된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을 가지고 있어서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을 말할 수 있는 사랑의 경험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이론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여 나타나는 현상의 체험에 가치가 있습니다. 믿음 역시 이론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타나는 행위와 능력의 역사에 진정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함으로 사랑의 가치를 제한 없이 드러내야 합니다. <계속>
『제한 없는 열애』
윤석전 목사 著 / 연세말씀사
위 글은 교회신문 <43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