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 없는 열애(熱愛)-(10)] 내 속에 있어야 할 사랑의 진심

등록날짜 [ 2015-04-20 11:24:51 ]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고전13:2)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만큼 사랑이 있는 자를 하나님께서 가치 있게 보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되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도 세상에 사랑이 있었습니다. 부부간에, 부모 자식 간에, 또는 이웃끼리 서로 사랑하며 인본주의적인 윤리 도덕 안에서 인정과 애정과 감정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사랑으로는 지옥의 멸망에서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난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면 그 사랑은 참으로 자신이 가지고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요, 또한 값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십자가 사랑은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는 최고의 능력이기에 인간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93절에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그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수 있겠습니까? 오직 골육의 친척이 예수 믿고 지옥의 신세를 면하고 천국을 소유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울의 사랑과 진심을 반증하는 구절입니다.

성경에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19:1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 속에 사랑이 없으면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나 때문에 이웃이 상처받고 불만이 생기고 시험에 빠져 교회 오기 싫다면 피차 사랑이 없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누구를 향해 사랑이 없다고 원망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다면 자신에게 고통을 가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고통을 가하는 그 죄 때문에 그가 하나님과 막힐까 염려하며 사랑의 향기를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랑과 신부의 사랑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이 큰 권리입니다. 만약 조선조 오백 년 역사에 상감의 사랑을 받은 종이 있다면 그 종에게는 대단한 영광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엄청난 영광이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피조물인 우리가 받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신부 삼으시고 친히 우리의 신랑이 되셨습니다. 신랑과 신부는 서로 사랑을 독점하는 관계입니다. 신랑과 신부 사이에 사랑이 없다면 비정상입니다. 주님과의 관계도, 이웃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 시골에서 자주 보던 광경입니다. 동네 술주정뱅이가 술을 잔뜩 먹고 취해서 진흙탕에 빠지면 지나가던 사람은 그저 또 빠졌구나라고 생각하며 그를 꺼내 주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 사람의 집에 가서 부인에게 진흙탕에 빠졌다고 알려 주기만 할 뿐입니다. 그러면 그 아내는 쏜살같이 달려가서 온 힘을 다해 남편을 부둥켜안고 진흙탕에서 꺼내어 집으로 데려갑니다. 왜 그럴까요? 그 아내의 마음에는 그렇게 해야 할 의무와 그렇게 할 사랑의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다면 사랑하는 만큼 힘이 생깁니다. 사랑은 이렇게 숨길 수 없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놓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은 이렇게 가장 값진 독생자라도 아낌없이 주는 것입니다. 신랑과 신부는 서로에게 아까운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신랑과 신부는 둘이 함께라면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신랑 되신 주님만 있으면 됩니다. 신랑 되신 주님은 자기의 몸을 찢어 신부인 우리에게 다 주셨습니다(26:26~28). 그러면 우리는 신랑이신 주님께 무엇을 드려야 할까요? 또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받기 원하실까요?

사랑은 경험으로 아는 것
주님이 오실 마지막 때에는 정말로 주님을 사랑한 신부만이 신랑 되신 주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충성과 수고와 노력도 주님을 향한 사랑이 있을 때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 없는 수고는 그 가치가 떨어집니다.

고린
도후서 135절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 했습니다. 자기 안에 믿음이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라는 말씀입니다.

내 안에 주님이 계시다면 나를 통해 주님의 사랑이 드러나야 합니다. 만약 예수를 자기 안에 모셨다면서 주님의 사랑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스스로 속고 있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없으면서 있는 척, 갖지 못하고 가진 척, 되지 못하고 된 척, 알지 못하고 아는 척하며 스스로 속아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 때에 주님은 신부를 데리러 오십니다. 신부는 신랑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는 신랑의 일이라면 모든 것, 곧 목숨도 아끼지 않고 내놓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신부로서 주님을 그렇게 사랑하고 있습니까? 신부가 신랑을 사랑하듯, 주님을 그렇게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을 향한 사랑도 없고 이웃을 향한 사랑도 없는 사람이 주여!” 하고 부르짖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벌써 그 사람의 언어와 행동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 하나님은 먼저 알고 계시는데 말입니다. 사랑만이 이웃을 가슴에 품을 수 있고, 하나님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영원한 자원입니다.

사랑은 배워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자기 속에 이미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사랑은 어떤 격도 다 무너뜨립니다. 사랑은 모든 조건을 다 뛰어넘는 힘이요 질서입니다. 주님의 격과 우리의 격을 놓고 볼 때 어떻게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될 수 있겠으며 어떻게 주님이 우리의 신랑이 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우리에게 주님을 향한 사랑이 없다면 하나님 나라에 가서 주님 앞에 섰을 때 어떻게 주님을 반갑게 만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해야 기쁘게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 영광스럽게 최고의 기쁨으로 만나기를 원하거든 그만큼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계속>


제한 없는 열애

윤석전 목사 / 연세말씀사

위 글은 교회신문 <43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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