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06-09 13:03:03 ]
우리가 의심하거나 믿지 않는 것은 주님을 무시하는 일
성경 말씀대로 절대 순종하며 행동을 해야 역사 일어나
디모데후서 3장 10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행실’에 대해 계속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해야 행동한다
하나님께서는 일단 명령하시면 ‘아멘’ 하며 순종하는, 행동하는 믿음 있는 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도 행함이 없다면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인간의 삶을 심판하실 절대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실과는 마음대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명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마귀에게 미혹받은 아내 하와의 말을 듣고 그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아담은 하나님 말씀을 꼭 그대로 이루어질 절대자의 말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람이 인정하든 말든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맙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었기에 아담과 그의 후손인 인류에게는 대대로 정녕 죽음이 닥쳐오고야 말았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 말씀 그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하는 자만이 하나님이 베푸시는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절대적으로 이루어질 전능자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주실 복이 그 사람을 지나칩니다.
그 결과는 영육 간에 죄 아래서 온갖 고통을 당하다가 영혼의 때에는 지옥 형벌을 피치 못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갖 질병으로 고통받는 인간을 방관치 아니하시고 아들 예수를 보내 치유해 주실 것을 선지자를 통하여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실제로 예수께서 로마 병정의 채찍에 맞으시고 피 흘리심으로 우리의 온갖 질병을 다 담당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가진 질병이 완전히 나을 때까지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예수께서 몸소 이루신 그 말씀을 인정하고 내 몫으로 소유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노라 하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반드시 내게 이루어질 생명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행동하라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해도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더는 상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상대해 주지 않는다면 그는 참으로 불쌍한 자입니다.
이와 반대로 하나님께서 상대해 주시는 사람은 하나님이 명하신 말씀에 예민하게 반응하여 움직이는 사람, 행함이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예수 믿는 참된 신앙입니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는 식으로 정성을 들이는 무속과 다릅니다. 바울은 하나님 뜻대로 행했기에 당대 사람들에게 자기를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11:10).
무엇을 본받으라는 말입니까? 우리의 영원한 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와서 하나님 말씀 그대로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는 대속제물로 주셔서 인류의 죗값을 갚으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제물 되신 것처럼 바울 자신도 예수 복음을 전해 죽어 가는 한 영혼이라도 더 살리려고 복음 전하는 일에 자신을 산 제물로 바치는 전도자의 삶을 살았으니 우리도 바울을 본받아 그런 영혼 구원의 열정으로 목숨을 내놓는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내가 하는 믿음의 행실을 하나님께서 책임지게 하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행실이 하나님이 책임지지 못할 것이라면 이는 다 육신의 소욕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할 만한 행실이 아니라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억울하고 분할 뿐입니다.
바울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해져야 한다는 점을 경기에서 규칙을 따르는 일에 비유했습니다. 규칙을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경기했다면, 일등을 했다 하더라도 결국 실격하여 상을 받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경기에 이기려는 이유는 썩을 면류관을 얻으려는 목적이지만, 우리는 썩지 않을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려고 믿음의 경주를 한다는 것입니다(고전 9:24~25).
하나님 말씀만이 분명하다
우리가 아무리 옳은 생각이라 여겨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지 않다면, 옳지 않을 줄 모르고 행한 그 행동이 죄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살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를 본받으라고 한 말은 그만큼 매사에 분명하고 자신만만하다는 말입니다. 만약 목사가 설교할 때 “이렇게 하는 편이 저렇게 하는 것보다 좋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을 줄로 압니다”라고 흐지부지하게 설교하면 그런 분명치 못한 설교를 들으려고 교회에 다시 올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자신만만하게 전해야 합니다.
설교가 ‘예’ ‘아니요’가 분명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 말씀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하여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라는 ‘길’이 어찌나 분명한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믿고 분명하게 행동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 말씀이 일점일획도 변치 않고 확실히 이루어질 영원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믿노라 하면서도 하나님 말씀을 절대화하여 명령으로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세상 온갖 책은 어느 것도 “하라”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명령하지 못합니다.
그 말대로 이룰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은 절대적으로 이루어질 진리의 말씀이기에 오직 성경만이 “하라” “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3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