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07-15 02:30:01 ]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 신념일 뿐이다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일과 어떠한 핍박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딤후3:10~11).
이번 호부터는 사도 바울이 말한 ‘믿음’이라는 구절을 상고해 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나는 믿음 때문에 핍박과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이겼다”고 말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말세에 닥치는 수많은 고통을 이겨 낼 수 없습니다.
세상 믿음은 실상이 없는 헛된 것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도 그들 나름대로 믿음이 있습니다. ‘돈 벌어야 잘산다’는 믿음이 있기에 뼈가 닳도록 일해서 돈을 벌려고 혈안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돈이 있어도 죽는다, 돈을 가져도 영원히 살지 못한다는 믿음은 없습니다. 돈 있으면 산다는 믿음은 신앙이 아니라 신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에서 나온 믿음을 신념(信念)이라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에서 나온 믿음만이 신앙(信仰)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내용이 그렇게 말씀하신 하나님 뜻대로 될 줄로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도 모두 믿음을 갖고 삽니다. 추울 때는 옷을 든든하게 입으면 따뜻할 줄로 믿고, 밥을 든든히 먹으면 배부를 줄로 믿습니다. 이런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단 한시도 살 수 없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이처럼 사람의 마음에 평안과 자유를 주고, 자기 자신에게 상당한 소망을 줍니다. 하나님 말씀이 없고 예수가 없는 곳에도 얼마든지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힘을 줍니다. 하지만 이런 세상적인 믿음으로는 영생(永生)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 수많은 사람이 자기 지식을 믿고, 젊음을 믿고, 건강을 믿고, 미모를 믿고, 권력을 믿습니다. 참으로 천태만상(千態萬象)의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물 없는 구름이요, 뿌리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에 불과합니다(유1:11~16). 그 믿음은 육신을 가지고 있는 동안 그저 밥이나 먹고사는 믿음에 불과합니다.
그런 믿음으로는 우리 영혼이 영생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우리가 가진 신앙의 믿음이 미련해 보입니다.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는 성경 말씀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조롱하듯 말합니다.
“예수가 도대체 누군데 그를 믿으면 천국에 가는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못된 짓 안 하고 남 해롭게 안 하면 사후에 좋은 데 가는 것 아닌가?”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로 믿어지지 않으니까 자기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으로 천국도, 믿음도, 영생도 정해 놓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믿는 믿음은 인간이 정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이 둘은 완전히 다릅니다. 사람이 정한 믿음은 100% 부도나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믿음은 반드시 믿은 그대로 이루어지는 실상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에는 보장이 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이 얼마나 믿어졌으면, 말씀 한마디에 즉시 순종해 오랜 세월 쌓아 둔 기득권을 모두 버리고 정처 없이 길을 떠났을까요? 참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이 부럽기만 합니다.
우리가 자식들에게 부모의 말씀을 잘 들으라고 하는 것은 그를 억압하려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삶의 지혜를 가르쳐 성공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건방진 자식들은 부모의 사랑과 훈계를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자기 믿음’으로 살려 합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믿음입니다. ‘내 믿음’은 내가 믿어 봤자 보장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내 믿음을 보장할 만한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내가 나를 못 믿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나를 믿지 않고 내게 믿음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하실 때 즉시 떠났습니다.
자기 믿음의 현주소를 보십시오. 말로만 믿는다고 하지, 실상 믿어야 할 현장에 부딪칠 때는 진짜 믿지 않습니다. 진짜 믿음이 필요할 때는 안 믿고, 믿음이 필요 없을 때는 믿음을 부르짖으니, 이것이 이중인격입니다.
말로만 이웃 사랑, 성도 사랑 하지, 조금만 기분 나쁘면 “죽일 놈, 나쁜 놈!” 하며 화를 버럭 내고 이를 갑니다. 이중인격자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안팎이 변치 않아야 합니다. 입으로가 아니라 믿음의 실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믿는다면, 믿음을 말이 아니라 내 안에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가지고 있는 자는 믿음의 작품을 위해 움직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변치 않아야 할 믿음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믿음에 관한 얘기는 “핍박과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나는 견뎠다. 그 이유는 장차 내게 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나를 보내신 주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상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이긴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어떤 극한 최악의 상황이 올지라도 변치 말아야 합니다. 믿음이 변하지 않으면 그의 안색도 변하지 않고, 행위도 변치 않습니다. 끝까지 믿음과 함께 있습니다.
이는 참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했습니다. 이 말은 그만큼 말세는 하나님 말씀이 믿어지지 않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과학, 물질문명이 최첨단으로 발달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대로 믿는 일이 정말 옳은 일인지, 눈앞의 현란한 현실 때문에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약속이 별것 아닌 것처럼 희미하게 여겨지기도 해서 믿음이 헷갈린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점점 성장할지라도 퇴보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4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