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 ‘마지막 때는 이러하니’(83)] 세상은 갈수록 참지 못하게 만든다

등록날짜 [ 2015-08-13 09:20:45 ]

말세에는 조급하게 하여 서로 분란을 일으키니

주님처럼 끝까지 참고 인내하여 축복을 받아야

사도 바울은 복음 전도를 위해 오래 참은 사랑의 사도입니다. 그는 사랑은 모든 것을 참는 힘이라며, 믿음으로 끝까지 참고 인내하여 믿음의 결과를 보라고 말합니다

참지 못해 망한 사람들

신앙생활의 승리는 견딜 수 없는 핍박과 환란을 믿음으로 참고 견딜 때 찾아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 말씀대로 오래 참지 못하고 당장 눈앞에 어려움이 닥쳐왔다고 하여 자기 성질대로 조급하게 행동하다가 망한 사람이 많습니다. 사울 왕이 그중 한 명입니다.

블레셋군이 벧아웬 동편 믹마스에 쳐들어오자 사울은 빨리 전쟁하러 나가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 몰렸습니다. 백성이 혼비백산하여 흩어지고 있던 터라 마음이 조급해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됐습니다. 황급히 하나님께 제사 드리고 전쟁을 치르러 나가야 할 판인데, 제사를 담당한 사무엘이 정한 기한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참다 못한 사울 왕이 제사장의 권한을 침범해서 자기가 제사를 드리는 중죄를 범했습니다(삼상10:8;13:8~15). 그러자 사무엘이 나타나 크게 책망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불순종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시겠다고 말해 줍니다. 이처럼 사울 왕은 급한 성질을 다스리지 못해서 망한 자입니다. 우리도 참지 못해서 조바심을 낼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 말세에는 조급한 때가 온다, 참지 못하는 때가 온다고 계속 경고합니다. 다시 말하면 참을 때 내가 얻을 영적 유익이 무엇인지를 따져 보아서 말세에는 오래 참으라는 말입니다. 참는 고통에 비해 유익이 크다면 참는 쪽에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해결해서 승부가 나는 일이 있지만, 참아서 승부가 판가름 나는 일도 많습니다. 그럴 때는 끝까지 참아서 승부를 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급한 성질대로 살다가 주의 일을 망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기분과 감정을 못 다스려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참는 것이 유익이라면, 어떻게 하든 참아야 합니다. 무엇이 내게 유익이 되는지 실리(實利)를 따지지 않고, 성질이 급해 참지 못하는 사람은 실수가 잦습니다. 저도 성질이 급해서 얼마나 실수를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과 얘기할 때도 그 사람 얘기를 다 들은 후에 내 얘기를 하면 좋을 텐데, 상대의 말을 자르고 내 주장을 펼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상대의 말을 차근차근 듣고 보면 먼저 소리부터 지른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평생 유익이 무엇이냐를 따져 보아야 합니다. 지금 하는 일이 득이냐 실이냐를 늘 찾아야 합니다. 무슨 일이 닥쳐왔을 때는 아무리 급해도 실제 유익이 무엇이냐를 따져 봐야 합니다. 그래서 참으면 내일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참음에 중도 포기는 없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일을 저지르지 말고 좋은 쪽으로 참아야 합니다. 좋은 쪽으로 자신을 이끌고 가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행복한 쪽으로 이끌어 가야 합니다. 참지 못하고 성질부리는 사람은 시한폭탄과 같습니다. 짚더미에 불이 붙은 것처럼 꺼진 듯해도 속에서 불이 타오르니 걷잡을 수 없습니다. 장작불보다도 무섭게 타오르는 성질을 어떻게 참겠습니까.

우리 주님이 대제사장 가야바의 안뜰에서 유대인에게 뺨을 맞고 침 뱉음을 당할 때 어떻게 참으셨겠습니까? 주님은 지금 굴욕적인 대우를 받고 계십니다. 자기가 창조한 피조물 인간에게 말입니다. 죄인이 뺨을 치고 침을 뱉는데, 의인은 묵묵히 당하기만 합니다. 전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뤄야 하기에 참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참습니다. 우리도 각자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일이 완성될 때까지, 사명을 다할 때까지 오래오래 참아야 합니다. 끝까지 참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실컷 참아 놓고 참다, 참다 이제 도저히 못 참겠네!” 하고 분을 터트리는데 결국 참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참아야 합니다. 참다 도중에 그만두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참는 것도 힘이 있어야

여전도 회원들이 자기들끼리 상의하다 서로 속상하는 일이 벌어지면, 다시는 안 볼 사람같이 거침없이 험한 말을 퍼붓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상대가 퍼붓든 말든 끝까지 참으면 겉에서 볼 때는 바보 같지만, 퍼붓는 사람은 성질 못 이겨서 지는 사람이 되고, 참은 사람은 성질을 이겨서 이기는 사람이 됩니다. 소리를 지른 사람이 아니라 안 지른 사람이 이긴 사람입니다. 우리는 승리의 개가를 부를 때까지 참고, 참고, 참아야 합니다. 끝까지 참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보낸 사람들에게 잡히실 때 베드로가 종 말고의 귀를 칼로 베자, 검을 꽂으라고 하시면서 너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 아느냐”(26:53)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주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능력과 권세를 아버지의 일을 위해 참으셨습니다.

또 빌라도의 법정에 끌려가서 심문받고 사십에 하나 감한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못 박히려 끌려가시기 전, 로마 군인들이 주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혔습니다. 가시 면류관을 엮어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들리고 그 앞에서 희롱했습니다. 자칭 왕이라 하셨던 주님을 조롱하는 의미로 말입니다. 또 침을 뱉고 갈대로 머리를 내리쳤습니다. 그때 주님의 심정이 어떠하셨겠습니까.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이 인간과 같은 종의 형체를 입고 피조물인 인간에게 그토록 잔인한 대우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그리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참으시고 인간의 죗값을 갚고 우리를 죄에서, 저주에서, 지옥의 멸망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참는 것은 최고로 힘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참는 정도에 따라 그 사람의 인내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주를 위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참는 것이 영적인 힘, 바로 영력입니다. 우리는 주를 위해, 내 영혼의 때를 위해, 이웃 영혼 구원을 위해 참을 수 있는 영력이 있기를 원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4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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