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84)] 오래 참음 속에 영광과 길이 있다

등록날짜 [ 2015-08-18 16:20:41 ]

영적생활을 좌절하게 만드는 요소는 무궁무진해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에게 성령의 능력 임하리


목회자에게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오래 참아야 할 일이 많습니다. 수많은 영혼을 살려야 하는 직분을 맡았으니까 그만큼 좌절하게 하고 무너지게 하는 일이 무섭게 닥쳐오지만, 그럴 때마다 인간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고난과 고통을 하나님을 의지해서 묵묵히 참아 내야 합니다.

한번은 만장 앞에서 어처구니없는 모멸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당사자인 제가 평안한 안색으로 묵묵히 듣고 있으니까 옆에 계신 분이 오히려 놀라서 저를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도대체 당신은 어떤 분이기에 저렇게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을 듣고도 한마디 대꾸도 안 하십니까? 참으로 그 인내가 대단하십니다.”

사실 그때 제 힘으로 참은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 다 맡기고 사니까,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을 믿었기에 마음이 편했습니다.

오히려 저는 제 속에 일말이라도 그런 모멸당할 일을 할 만한 끼가 있는지 찾아서 회개할 따름입니다. 그를 상대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하면 어떤 모진 말도 쉽게 참을 수 있습니다. 그저 참으면 됩니다.

시비가 붙을 때도 한쪽만 참으면 됩니다. 성질내는 사람은 상대가 아무 말 하지 않으면 혼자서 성질내다가 그만둡니다. 그렇지 않고 상대가 덤비면 결국 싸움으로 번집니다. 누군가 성질내면 덤비지 말고 가만히 두면 됩니다.

화가 나서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라도, 내 죄를 담당하시려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신 주님을 생각하면 세상에 못 참을 일이 없습니다. 참다 보면 참음 속에 주님이 가신 진리의 길이 보입니다. 참음 속에 영원한 승리가 보이고, 하늘나라 영광이 보입니다.

의분을 내기도 하지만
저도 청년 때는 의협심에 불타 종종 성질을 부렸습니다. 저는 힘없는 여자를 괴롭히는 꼴을 보면 속에서 분이 나고 속이 상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남자가 약한 여자를 괴롭힙니까. 이것은 비열한 짓이다 싶으니까 의분이 나서 혼자 성질을 부리고 못 참아서 그들을 불러 나무라기도 했습니다.

목회하면서도 때로는 견딜 수 없이 속이 상할 때가 있습니다. 주의 일을 수종 드는 사람들이 제가 성령의 감동으로 추진하는 일을 제대로 수종 들지 못할 때 그렇습니다.

“아무개야, 왜 주님 일을 이렇게밖에 못했니? 왜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니?”라고 심하게 나무랄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잘못했다고 해놓고 다음번에 똑같은 잘못을 반복해서 저지르는 모습을 볼 때는 참기가 몹시 힘듭니다.

세상에서는 한 번 실패가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고 합니다. 하지만 주의 일은 한 번 실패하면 영혼 구원에 막대한 손해가 옵니다. 그 영혼이 예수 믿고 구원받아 영원히 멸망할 지옥에서 나올 기회를 영영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의 일은 실수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영원한 생명의 차원에서 주의 일을 잘못해 놓으면 그 영혼을 구원할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에 애가 타서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만약 제 개인적인 일을 그렇게 망쳐 놓았다면 그렇게까지 화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일은 아무리 큰 손해를 봤다 해도 영혼을 구원할 기회를 잃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가만히 봐서 야단칠 만한 일을 야단치지, 도를 넘어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은 야단치지도 않습니다. 야단칠 때도 그만한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잘못을 고칠 가능성이 보이면 화를 내서라도 바꿔 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화를 내도 내 속에 불의가 있다면, 그 불의가 역사하지 못하도록 끝까지 참습니다.

피가 솟구치는 일을 절제해서 누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육신의 소욕을 이길 힘이 얼마나 강하냐, 약하냐에 따라서 참느냐, 못 참느냐가 결정됩니다.

그러면 언제까지 참아야 할까요? ‘끝까지’ 참아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 어느 정도만 참는다고 결정해서도 안 됩니다. ‘주님이 인정하실 때까지’ 참아야 합니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참아야 합니다.

참는 사람은 자기 속에서 어떤 육신의 요구가 올라와도 그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성령의 요구에 절대적으로 동의하려 합니다. 성령의 요구만이 모든 것을 참을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이혼하는 부부가 많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부간에 똑같이 못 참아서 일어나는 사건이 이혼입니다. 참지 못해서 헤어지면서 성격이 안 맞는다고 핑계를 댑니다. 하지만 사랑하면 참아집니다.

내일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참습니다. 믿음 있는 사람도 참습니다. 믿음이 없고, 소망이 없고, 사랑이 없으니까 못 참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만 있으면 확실하게 참을 수 있습니다.

참는 자는 정복한다
참는다는 말은 무조건 가만히 있으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참는다’는 것은 ‘정복한다’ ‘소유한다’ ‘얻어 낸다’는 뜻입니다. 내 것이 되니까 참지, 내 몫이 안 되면 참겠습니까. 내 기업이 되니까 참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못 참습니다.

온종일 땀 흘려 일하는 것도 저녁에 꼭 품삯을 받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10일, 20일, 30일, 40일을 금식해도 끝나면 응답이 있다고 믿기에 마지막까지 참는 것입니다.

끝나면 먹는다는 소망이 얼마나 대단한지 먹는다는 힘 때문에 참습니다. 먹는다는 소망 때문에 참습니다. 또 금식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음을 확신하기에 참고, 또 참고 금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익을 보고 참습니다. 참는 것보다 유익이 크면 참아야 합니다. 참는 것보다 큰 유익이 있으니까 참습니다. 오늘 성질내는 것보다 내일 큰 유익이 있으니까 참습니다.

우리는 열매를 위해 참는 사람 되기를 원합니다. ‘오래 참음’이라는 말은 나를 통해 어떤 작품이 있을 때까지 참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참아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4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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