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 없는 열애(熱愛) (30)] 사랑을 받은 자라면 그 열매를 내놓아야 해

등록날짜 [ 2015-09-14 18:06:33 ]

하나님 말씀 속에서 은혜의 충만을 체험했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그 끝없는 사랑을 전해 주어야

벼농사가 성공하는 데는 햇빛과 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면서 벼의 뿌리가 말라죽거나 제대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때 비가 와서 논에 물이 가득 차면 벼가 무럭무럭 잘 자라고, 태양빛이 쨍쨍 내리쬐면 벼가 자라면서 낟알이 알차게 여물어 갑니다. 이렇듯 사랑과 은혜가 충만한 교회는 성도들의 믿음과 육체가 건강하여 생동감이 넘치고 부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잘 자라서 거둘 것이 풍성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그 열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천지만물을 소유하고 정복하며 다스릴 절대적 권리를 부여하신 것은 인간을 향한 사랑과 믿음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의 모든 말씀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베푸신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오직 영혼을 살리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도 영원히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생명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사랑에서 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살기 위해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된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방종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몰라 지옥을 향해 가는 사람을 볼 때 그 영혼을 살리고자 하는 진실한 사랑을 자연스럽게 전하고 그 사람을 구원할 때까지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의가 있고 사랑이 있기 때문에 믿음이 있고, 용서가 있고, 구원이 있고, 치료가 있습니다. 그 모든 사랑으로 주신 것이 우리 속에 체험되는 사랑의 역사로 충만한 것입니다.

새파란 못자리판의 모에서 가을 들판의 황금빛 벼를 바라본다는 것은 경험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새파란 모가 자라서 가을이 되면 벼를 수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받는 하나님의 사랑은 모를 심어 놓은 드넓은 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논에 심긴 모는 벼이삭이 나오기 전부터 주인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리고 사랑받은 결과로 가을에 벼이삭을 내놓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면 그 사랑의 열매를 내놓아야 합니다. 생명을 생산하지 못하는 사랑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또 목사의 설교가 사랑과 생명을 공급하지 못한다면 그 설교 역시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사랑과 생명을 받아들여야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유지하도록 성령 충만하게 신앙생활 해야 하며, 모든 믿음의 삶 가운데 사랑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는 신앙생활과 사랑이 없는 성도의 교제는 아무런 의미와 목적이 없는 것입니다.

세상은 남편이나 아내나 부모나 자식에게서 인본주의의 사랑을 받기를 갈망합니다. 또 그와 같은 인본주의 사랑이 부족할 때 불평하게 됩니다. 만약 예수를 믿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엄청나게 큰 하나님의 사랑이 존재하고 있음을 모르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압도당해 본 경험이 없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는 사람은 매우 만족해합니다. 전혀 불만이 없습니다. 오히려 감사하며 살 따름입니다. 단지 하나님의 생명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멸망으로 가는 이웃을 볼 때 마음이 아플 뿐입니다.

희생을 투자하는 사랑

배고픈 사람의 사정을 알고 맛있는 것을 사 준다면 사랑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내가 가진 것을 사용하여 관심을 표현할 때 사랑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아무것도 사 주지 않고 말로만 위로한다면 과연 그에게 사랑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작은 것이라도 주는 자의 사랑의 표현이 있을 때만이 사랑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내 것을 희생하지 않고는 줄 수 없습니다.
 
나무가 뿌리에서 진액을 공급받아 열매를 맺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끊임없이 공급될 때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내 인정으로 사랑하면 어느 땐가는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불만을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가진 육의 것으로 사랑하다 보면 언젠가 그 사랑이 고갈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고갈되지 않고 상대방이 나를 대적할지라도 오히려 그럴수록 스데반과 같이 더욱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는 사람은 사랑해 줄 상대에게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슨 권리로 남에게 희생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주님이 우리를 살려 내기 위해 죽으신 것처럼 우리도 감사와 기쁨으로 이웃을 위해 자기의 희생을 투자해서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배가 고프다고 해도 길 가는 아무에게나 자장면 한 그릇 사 달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나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에게 무슨 권리로 자장면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교회에 와서는 막무가내로 사랑받기만을 바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마치 생면부지의 남에게 자장면을 사 달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성경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6:31)고 말씀합니다. 사랑받기 원한다면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계속>


제한 없는 열애

윤석전 목사 / 연세말씀사

위 글은 교회신문 <45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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