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90)] 인내는 더 큰 상급을 향한 영적 코스다

등록날짜 [ 2015-10-01 16:33:43 ]

주를 위해 당한 고난의 분량만큼 하늘의 상 있어
영적 유익과 소망을 위해서 끝까지 참고 견뎌야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마지막 때는 ‘인내’ 하라고 당부합니다.

지옥은 참고 싶어서 참는 곳도, 견디고 싶어서 견디는 곳도 아닙니다. 안 참으면 안 되고, 안 견디면 안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를 갈며 슬피 울며 참혹한 고통을 영원히 참고 견디는 곳입니다. 그래서 멸망(滅亡)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말하는 ‘인내(忍耐)’는 내가 그 고난을 받지 않아도 되는데, 고의로 고난당하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내가 주를 위해 당한 고난의 분량대로 내일 하늘에서 받을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견딜 수 없는 곳에서 견디고, 절망적인 상태에서 당하는 것을 인내라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인내’라는 고난당하지 않아도 되지만, 더 큰 상급을 향해서 전진하는 의미로 참고 견디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상할 기업
게으른 사람은 한여름에 정자나무 밑에서 다리를 뻗고 누워 낮잠을 달게 잡니다. 그는 한겨울에 먹을거리가 없어 남의 집으로 동냥하러 다녀야 합니다. 똑같은 시간에 부지런한 농부들은 논밭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일합니다. 가을에 곡식을 거둬 창고에 쌓아 두고 겨우내 먹을 소망으로 인내하며 일합니다.

우리는 내일의 열매와 작품을 바라보며 인내해야 합니다. ‘목적 없는 참음’은 인내가 아닙니다. 보상 없고 소망 없는 인내는 객기일 뿐 아무 쓸데가 없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고, 고통을 당해도, 그 고난의 분량만큼 하늘에 상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내는 아주 값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고 감동할 만한 믿음을 지키는 인내, 하늘의 상(賞)을 지키는 인내, 주님과 의리를 지키는 인내, 인격적인 인내, 보람 있는 인내, 가치 있는 인내, 작품 있는 인내를 해야 합니다. 새벽까지 인내하며 기도하면 응답이 있습니다. 뺨 맞아 가며 전도하면 하늘에 상이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땀 흘리며 충성하면 하늘에 면류관이 있습니다. 기분 나쁘고 속상해도 참고 견디면 하늘에 보상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인내는 모두 하나님이 보상할 기업입니다. 조금만 기분 나쁘면 ‘속상해서 교회에 못 나오겠다, 기분 나빠서 충성 못 하겠다, 왜 나만 하라고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은 벌써 반석 위에 서 있지 못한 사람입니다. ‘반석’이라는 말은 ‘요지부동의 인내’를 말합니다.

인내는 죽기까지
사도 바울은 엄청난 인내의 사람입니다. 로마 시민증을 가진 공회원, 율법사, 가말리엘의 문하생이라 어디를 가도 대우받을 조건을 갖췄지만, 그 권한을 일절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를 위해 고난받는 일을 달게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의 육체에 채우기로 작정했습니다. 그 고난을 끝까지 견디면서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로마서 8장 17~18절에 말했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의리를 지키기 위하여, 하늘의 소망과 상을 위해서 당하는 고난은 자원해서 당해야 하기에 고난 속으로 푹 들어가서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그저 상한 갈대처럼, 꺼져 가는 등불처럼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인내는 죽기까지 해야 합니다. 목적을 둔 인내, 소망 있는 인내, 주님과 관계를 위한 인내를 아는 사람은 오늘 당하는 고통보다 내일 하늘에서 받을 찬란한 영광을 크게 여깁니다. 그런 사람만 인내할 수 있습니다.

자기 영혼의 신세를 위해 인내하라
우리는 주님에게 받은 사랑의 의리 때문에 인내하고, 내 영적인 유익, 즉 소망 때문에 인내해야 합니다. 거기에 덧붙여 내 영혼의 신세 때문에도 인내해야 합니다. 믿음에서 떠난 사람들은 다 자기 영혼을 사랑하지 않는 자입니다. 자기 영혼을 사랑한다면 끝까지 인내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 소망 있는 사람, 자기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도 해 볼 수 없습니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자는 변덕 떨지 않습니다. 아주 심지가 굳셉니다. 성경은 심지가 굳은 자, 정직한 자, 믿음 있는 자를 쓴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얼마나 인내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11:23~28).

또 빌립보, 골로새, 에베소, 빌레몬서와 같은 옥중신서를 보면, 감옥에서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를 만큼 사지(死地)를 넘나드는 고통 속에서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고통 가운데에서도 바울은 단 한 번도 원망이 없고, 내가 이럴수록 주님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니 감사하다, 내가 고통스러울수록 내게 주님의 흔적이 있으니 감사하다, 내가 고통스러울수록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니 감사하다, 내가 고통스러울수록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은혜를 깨달으니 감사하다, 고통스러울수록 하늘에 상이 있으니 감사하다, 고통스러워도 내 영혼이 복되니 감사하다고 고백합니다. 모든 인내의 소망을 그렇게 굳게 가졌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5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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