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10-29 13:45:59 ]
내부에서 일어나는 게으름과 나태를 극복해야
외부에서 가하는 고통과 고난도 이길 수 있어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에서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마지막 때 당할 핍박을 일러주었습니다. 로마서에서는 바울 자신이 당한 극심한 핍박을 경한 환난이라며 능히 믿음으로 이길 것을 권면합니다. 오늘날도 신앙인의 안팎에서 닥쳐오는 무서운 핍박을 견디려면 오직 주님을 의지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핍박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육체를 강타해서 두렵고 무섭게 하여 믿음의 기세를 꺾는 예가 있고, 하는 일이 안 되게 해서 ‘믿어도 되는 일도 없네!’ 하며 스스로 무너지게 하는 예가 있습니다. 전자는 육으로 나타나는 핍박, 후자는 영으로 나타나는 핍박입니다.
영적생활의 중요성을 먼저 알아야
어떤 종류든 핍박의 목적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 놓는 것입니다. 마귀는 온갖 방법으로 우리를 핍박해서 예수에게서 잔인하게 끊어 놓으려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를 아시기에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15:5~6).
핍박의 목적이 주님의 손에서 끊어 놓으려는 것이기에 우리가 이 사실만 분명히 알면 처음부터 핍박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차라리 내 육체가 죽는 편이 낫지, 내 영혼이 주님의 손에서 끊어지면 난 영원히 망한다. 육체는 어차피 70년, 80년 살다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원히 살아야 할 내 영혼은 망하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영적생활을 분명히 아는 사람은 핍박을 당해도 아주 가소롭게 여기며 거뜬히 이겨 냅니다.
영적생활을 얼마나 귀중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핍박에 승리하느냐, 패배하느냐가 갈립니다. 영적생활이 얼마나 귀중하고 소중한지, 이 땅에서 잠시 누릴 목숨보다 얼마나 큰지를 아는 사람은 영적생활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핍박을 능히 이겨 냅니다.
아픔과 두려움만 이기면
하루는 어머니가 저와 형제들을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핍박은 두 가지만 이기면 된다. 첫째 아픈 것, 둘째 두려운 것이다.”
예수 믿지 말라고, 제사 지내라고 아버지가 아무리 무섭게 핍박해도 아픔만 이기고 두려움만 이기면 핍박을 능히 이겨낼 수 있다고, 체험에서 나온 신앙 고백을 자식들에게 들려주시던 제 어머니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죽음의 고통에 이르는 무서운 핍박, 사람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그 아픔과 두려움을 이기신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이 힘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힘을 얻으려고 제 어머니는 날마다 몸부림쳐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핍박을 심하게 받거든 ‘어떻게 견디나?’ 걱정하지 말고 ‘어림도 없다!’라고 단호히 마음먹고 기도해야 합니다. 마귀는 흔들리고 두려워하는 우리의 속내를 다 압니다. 어느 정도 핍박을 가하면 무너질지를 다 압니다. 악한 마귀에게, 어느 정도 핍박을 가하면 무너질 것이라는 틈을 보이지 말아야 합니다. ‘저 사람은 아무리 핍박해도 안 된다’고 여기도록 절대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삼각산에 가면 흔들바위가 있습니다. 세게 밀면 금방 굴러떨어질 것 같은데 아무리 힘껏 밀어도 흔들거리기만 할 뿐, 절대로 안 굴러갑니다. 수십 명이 밀다, 밀다 포기하고 맙니다. 마귀도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핍박하다 지치면 손을 떼고 맙니다. 그래야 승리한 것입니다. 그 전에 흔들리면 안 됩니다. 바울처럼 흔들리지 말고 악착같이 기도하며 고난 중에 기뻐하며 핍박 중에도 복음 전도의 사명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겨야 합니다.
그까짓 핍박은 달걀로 바위 치기다, 내 육신이 깨지면 내 영혼은 천국이다, 하는 사람은 누구도 감히 해볼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당하는 작은 고통 때문에 영원한 행복을 내주고 영원한 고통을 떠안을 수는 없습니다. 영적생활을 아는 사람은 핍박에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최강의 적(敵)은 나태와 게으름
신앙생활에서 제일 무섭고 두려운 적은 나태와 게으름입니다. 게으르고 나태한 데다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더러워서 교회 못 다니겠네, 하며 대번에 악한 속내를 드러냅니다.
핍박받을 때는 차라리 피 흘림을 무릅쓰고, 죽음을 무릅쓰고 이기려고 몸부림치지만, 게으르고 나태하면 대책이 없습니다. 이때 핍박하면 와르르 무너지고 맙니다. 그럴 때 환난이 닥치면 모든 것이 끝나고 맙니다. 그러기에 언제든지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느 순간에 무너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도 일 년에 수십 번 국내외에 다니며 성회를 인도하느라고 인간의 육신으로는 견딜 수 없는 피곤의 고통이 몰려옵니다. 그런 피곤의 고통이 극치에 달하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마치 바늘로 콕콕 찌르듯 아픕니다. 어떤 때는 아예 저 자신을 잃어버립니다. 한참 후에야 의식이 돌아와서 정신을 차릴 때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극치의 피곤을 매사에 기도로 버텨 냅니다.
또 항상 삶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며 삽니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주님의 마음을 살핍니다. ‘주님이 그 일을 기뻐하실까? 주님이 정말 원하시는 일일까? 혹시 주님의 마음이 불편하시면 어떻게 하나?’ 왜 그럴까요? 주님이 나를 꼭 붙들고 있어야 어떤 시험과 환난과 핍박이 와도 안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핍박과 문제가 와도, 주님이 나를 꼭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주님을 붙잡으면 어느 때 놓을지 모르니 주님이 나를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핍박도 이기고 시험도 이깁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있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5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