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11-25 16:37:02 ]
복음을 전하다 당하는 고난은 영혼의 때에 받을 상
주를 향한 충성은 그 어떤 핍박에도 멈출 수 없어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핍박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딤후3:11).
말세에는 이같이 ‘고통당하는 때’가 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안디옥과 이고니온, 루스드라에서 어떠한 고난을 받았는지를 살펴봅시다.
바울이 당한 고난과 핍박
사도행전 13장 13절에서 14장 7절까지는 바울이 1차 전도여행 때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설교한 내용입니다. 요약하면 “너희가 예수를 죄 있다고 죽였으나 그는 삼 일 만에 부활해서 많은 사람에게 나타났다. 그러니 너희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려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신 예수를 믿어 영생을 얻어라”라는 말입니다. 그때 죄 없는 예수를 죽인 자들이 마음에 찔려서 바울과 바나바를 트집 잡아서 때리고 옥에 가두는 고난을 가했습니다.
옥에 갇혔을 때 바울이 당한 고생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복음 전하고 은혜받는 일이 자유롭지만 바울 시대에는 예수를 구세주로 믿거나 전도하면 붙들어다가 때리고 옥에 가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옥에 갇히고 고통당하는 일이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자기가 전도한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잘하지 못할까 봐 늘 걱정이었고, 부담스러웠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부담스러운 일이 무엇입니까? 내가 전도한 사람이 예수 안 믿고 지옥에 갈까 봐 늘 걱정하고 고민하는 신령한 부담을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다”(고후11:23~27)고 합니다.
바울은 수많은 매를 맞고 핍박을 받으면서도 복음 전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매를 맞으면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매를 맞아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정을 모릅니다. 저도 어렸을 때부터 예수 믿는다고 아버지에게 매를 수없이 맞았고, 군대에 가서도 주일마다 교회에 간다고 피투성이가 될 만큼 맞았습니다. ‘이러다 죽겠구나!’ 싶을 만큼 심하게 맞았지만 매 맞는 고통보다 예수 믿는 믿음이 더 크기에 그 모진 핍박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매보다 믿음이 클 때 이길 수 있습니다. 살가죽이 짖이겨지는 매를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은 죽음을 감당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고통을 당하고 여러 번 죽을 뻔했다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목숨이 끝날지라도 복음 전도에는 양보가 없고 주를 향한 충성은 멈출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사람을 누가 말릴 수 있겠습니까?
믿음으로 이기는 고난
말세에는 이같이 고통받는 때가 온다고 하였습니다. 온갖 고문과 학대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 때, 예수 믿겠다고 할 사람이 불과 몇 명 되겠으며, 그와 반대로 예수를 부인하며 믿지 않겠다고 할 사람은 얼마나 많겠습니까? 믿음 없이는 절대로 고난을 이길 수 없습니다. 모진 매를 맞아 마치 살에 인두를 댔다가 뗀 듯 고통스러운 순간에, 천국과 지옥이 눈앞에 그려지지 않으면 그 고통을 이길 수 없습니다. 나를 구원하려 죽으신 예수 십자가 피의 공로를 이를 악물고 붙잡지 않으면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믿음으로 천국과 지옥을 붙들고 있어야 하고, 주님의 십자가 피의 공로를 믿음으로 움켜쥐고 있어야 하며, 날 위해 죽으신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생생히 기억해야 매사를 이길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난을 어떻게 이겼습니까? 끝까지 예수를 전함으로 극복했습니다. 바울이 로마 시민이라는 권한을 사용했다면 매 맞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 권한을 사용하지 않고 복음 전도하려고 매 맞았습니다. 고난과 핍박을 받을지라도 절대 전도는 양보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가 가진 권한을 사용하지 않고 한 사람이라도 더 복음을 전하다가 당하는 고난과 핍박은 영혼의 때에 받을 상이요, 주님을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말세에 고통과 핍박을 이길 큰 믿음
바울과 초대교인들에 비교하면 우리는 너무 편안하게 신앙생활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 전하다가 옥에 수없이 갇히고 매를 수없이 맞은 성경 구절을 대할 때 ‘나는 제대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니구나. 나는 그토록 진실하게 전도하는 사람이 아니구나’ 하고 초라한 나를 보게 됩니다. 위를 바라보는 자는 올라가지만, 아래를 내려다보는 자는 내려갑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주님처럼 되고 싶다’는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전서 11장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처럼 너희도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크게 될 사람은 매를 맞고 그 어떤 고통과 어려움이 와도 고지를 정복할 힘과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바울의 목표는 예수였습니다. 예수라는 푯대를 바라보고 그 모진 매를 기쁨으로 감내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도 큰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바울처럼 큰 사람은 수많은 매를 맞고 시험과 핍박을 당해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큰 사람은 자존심과 썩어 빠진 자아, 육신의 소욕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물질과 환경에 넘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바울이 얼마나 큰 자입니까? 순교자는 이 땅에서 제일 큰 자입니다. 목숨의 위협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 믿음을 가져야 고통하는 말세에 신앙에 승리합니다. 우리는 말세에 아무도 감히 손대지 못하는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6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