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 ‘마지막 때는 이러하니’(98)] 소망이 있기에 견딜 수 있는 고난

등록날짜 [ 2015-12-02 18:16:32 ]

좋은 상품일수록 정당한 값을 지불해야 하는 것처럼

그 날의 큰 영광을 위하여 영혼 구원에 더 매진해야

말세에는 바울의 삶처럼 핍박과 고난과 능욕과 수없이 죽을 뻔한 위험이 필연코 오고야 맙니다. 이를 디모데후서 31절에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소망이 있기에 견딜 수 있는 고난

저도 평생 핍박과 고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고난과 핍박을 얼마나 하나님의 법대로, 복음대로, 성경에서 명령하신 대로 당하고 이겨 가느냐를 상당히 조심스럽게 검토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제가 주를 위해 살다가 고난과 핍박과 모략을 당해도 하나님의 법대로 하지 아니하면 괜한 고생만 할 뿐 하늘에 어떤 상도 없기에 항상 하나님의 법과 말씀을 따르려고 몸부림칩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주를 위한 것이고 복음 증거를 위한 것이기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육신이 끝나면 이 땅에서 받는 모진 고난도, 핍박도 끝이기에 하늘나라에 가면 큰 상을 주실 것을 확실히 믿고 담대히 이겨 나갑니다.

고난은, 하늘에서 받을 상을 소망하는 기쁨이 동반하지 않으면 못 견딥니다. 우리가 최후의 심판대에 올라 영광의 박수갈채와 상을 받는 그 날, 이 땅에서 주를 위해 당한 모든 고난은 다 잊혀지고 찬란한 영광만 있을 뿐입니다. 그날을 고대하면 고난은 쉽게 견딜 수 있습니다

고난을 지불하고 얻는 상과 영광

어떤 각오나 결심을 하든 그것을 수행하는 동안 고난을 이기지 않으면 열매를 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아름다운 결과만 보면 안 됩니다. 결과를 얻으려면 그만큼 투자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큰 상을 얻으려면 자기 자신과 환경과 악한 영들과 수없이 많은 싸움을 해야 하고, 고난을 투자해야 합니다.
 
신앙인들이 기도하기를 무척 힘들어 하지만, 또 가장 하고 싶어 하는 것도 기도입니다. 또 하려고 하면 잘되는 것이 기도이며 아무리 하려 해도 잘 안 되는 것도 기도입니다. 그러나 기도에 승리하면 매사 승리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주를 위해서 스스로 고난의 삶을 자청하는 것입니다. 고된 고난이 있을 때 멋진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저는 하늘나라가 분명히 있다고 믿고, 하나님이 하신 약속이 분명히 이루어진다고 믿기에, 다른 사람들이 핍박과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면서 뭐 그렇게 애쓰느냐?”라고 말해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꿈과 소망이 있습니다.

저는 누구보다 하나님의 관심을 제일 많이 모으기 원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기 원하며, 하나님이 볼 때 제일 믿음직스럽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일을 제일 많이 하길 원합니다. 그래서 고난이 와서 설령 숨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가장 영광스러운 대우를 받고 싶습니다

고난을 이기게 하는 신령한 소망

하늘의 소망이 희미해지면, 고난이 올 때 시험에 듭니다. 그러나 소망이 확고한 사람은 어떤 고난이 와도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가서 보면, 믿음을 지키려고, 복음 전도와 충성하느라 고난을 받으면서도 주님을 바라보고 일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는 엄청나게 클 것입니다.

바울은 그 하늘의 소망을 확신했기에 여러 번 죽을 뻔한 고난을 당했지만 모두 이겼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고후11:24~26).

바울은 이렇게 고난을 받아도 복음 전도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이와 같은 중단 없는 복음 전도로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도는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했으나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다 죽었습니다. 오직 이방인을 살리려고 수차례 험난한 전도여행을 다니며 복음 증거에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바울로 말미암아 전 세계 수많은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됐습니다. 바울이 고난의 값을 지불한 열매가 제한 없이 맺힌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를 믿지 않아 그토록 열정적으로 전도하지 않았다면 고난받을 일도 없었고, 오히려 그 시대 많은 사람이 그를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사람, 로마의 시민증을 가진 공회원이라고 부르며 그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 때문에, 복음 때문에, 죽는 자를 살리려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현재성을 현장에서 보여 주고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히기 위하여 자청해 고난을 받았습니다

오직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불이 난 건물에 갇힌 자나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면 죽음을 각오하고 불 속이나 물속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불에 들어갈 때 나는 불에 들어가면 타 죽는다’, 물에 뛰어들 때에도 물속에 들어가면 죽는다라고 염려와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안 됩니다. ‘일단 살려야 한다는 생각만 해야 합니다. 복음 전도도 일단 지옥에서 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매달려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 수없는 고난이 있을지라도 영혼 구원의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마지막 때는 복음 전도 하다가 큰 핍박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남북이 대치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만약 공산화가 되어 신앙생활 할 자유가 없어진다면 예수 믿기를 포기하는 엄청난 배교 사건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확실하게 알고 가진 사람, 하늘의 소망이 충만한 사람이라면 죽어도 주님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날이 오기 전에 우리는 목숨을 바울처럼 복음 전하는 일에,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소모품으로 써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6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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