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12-16 09:46:36 ]
연단과 시련 속에서 큰 영광과 보상이 있으니
천국 소망 바라보며 끝까지 견디고 승리해야
우리 기독교인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힘들게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유익 있는 수고가 아무런 유익 없이 노는 것보다 행복하듯, 우리 기독교인은 육신에 극심한 고통이 따르더라도 주의 뜻을 따르는 신앙생활을 하는 편이 더 즐겁습니다. 신앙생활에는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영혼의 기쁨과 하늘에서 받을 보상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예수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복음 증거하다가 당하는 고난은 세상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유익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고난을 기쁨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이 닥칠 때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아, 소망이 있구나, 꿈이 있구나, 장차 올 영광이 크겠구나’라고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당하는 고난만 보면 낙심하여 쓰러질 수밖에 없지만 하늘에서 보상받을 그 날을 소망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고난에서 건지시는 주님
바울은 인간의 힘으론 견디기 힘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은 후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고 고백했습니다(고후1:10). 즉 “주님은 우리가 고난받는 현장을 방관하는 분이 아니고 거기서 건져내시는 분이시니 어떤 고난이 와도 두려워 말라, 걱정하지 말라, 주님이 도우신다”라는 말입니다. 성경을 보면 인간의 육체로는 넘기 힘든 가시덤불이 많고, 걸어갈 수 없는 진흙탕이 있고, 올라갈 수 없는 험한 능선이 셀 수 없이 많지만, 결국은 “주님이 내 손잡고 가셨다”, “주님이 역사하셨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간증이 쏟아집니다.
우리는 자기 힘으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야 합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셔도 우리를 그냥 가게 내버려 두십니다. 인간의 한계가 왔다고 해서 “더는 못 가겠다” 하고 포기하면 주님이 실망하십니다. 그럴 때일수록 “나는 죽어도 가야 된다”라고 고난을 박차고 나아갈 때 그 각오를 주님이 보시고 힘 주십니다. 고난은 우리가 그냥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와 믿음으로, 주를 위해 죽도록 충성할 때 주님께서 역사하셔서 고난을 이기게 하십니다.
저도 타의든, 자의든 고난받을 때 ‘아프다’, ‘피곤하다’, ‘힘들다’ 하고 주저앉으면 더 큰 좌절에 빠집니다. 힘들 때 일어나서 일하고, 아플 때 더 강하게 기도하고 설교하면, 고난을 가하던 그 문제가 해결되는 체험을 자주 했습니다. 문제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이 나를 건지셨다”는 바울의 고백이 실감 나는 순간이지요. 마지막 때 무서운 핍박과 조롱과 고통과 죽임과 억압이 닥쳐올지라도, 하나님이 견딜 수 없는 상황에도 하나님이 나를 돕는다는 믿음만 확실하게 붙잡으면 최후에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건지신다’는 믿음을 굳게 간직하길 바랍니다.
최후의 승리자가 되기 위하여
다윗이 아무 이유 없이 사울 왕에게 쫓길 때 수없이 비참하고 참혹한 지경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동굴 속에서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왔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종을 치는 것은 하나님이 노하실 일이라며 죽이기를 거부하고 다만 옷자락만 베어 갑니다. 인간의 방법과 인간의 수단으로 얼마든지 단번에 고통을 피하고 해결할 수 있을지라도, 주님이 원하시면 고난받아야 하고, 주님이 몰아넣으시면 고통 가운데 들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정금 같이 단련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에도 예수 증거와 하나님 말씀으로 인하여 목 베임 받은 자들과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은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노릇 한다고 하였습니다(계20:4). 주를 위한 일을 할 때 목숨을 잃는 큰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는 결단코 천년 동안 왕노릇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영광의 자리에 앉으려면 주를 위해 당하는 고난을 기쁨으로 극복할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를 위한 고난을 얼마나 많이 극복하고 넘어가느냐에 따라서 하늘에서 얼마나 큰 자인지 판가름 납니다. 그 영광을 바라보는 자만 이 땅에서 어떤 모진 고난이 닥쳐오더라도 가볍게 극복하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영적인 고지를 점령하라
운동을 해도 피땀 흘려 맹훈련하는 사람에게만 큰 성장과 발전이 있습니다. 어떤 일에든 머리가 될 만큼 앞서가려면, 그만큼의 고난을 이겨야 합니다. 바울이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몸부림을 치며 복음을 전한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하나님이 쓰신 성령의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까. 오늘날에도 얼마나 연단 속에서 기도의 고지를 점령하느냐, 얼마나 참고 견디면서 충성의 고지를 정복하느냐, 얼마나 핍박과 조롱과 무시를 받아가면서 한 영혼이라도 전도하여 구원받게 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으로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나는 어떤 고난이라도 정복하고야 말겠다”라고 고난을 당하면서 도 끝까지 주의 일을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그 고난에서 건지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심지가 굳은 자를 쓰십니다. 조그마한 고난과 시련에도 못 하겠다고 할 정도로 심지가 약하면 하나님께서 쓰실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도무지 믿을 수 없어서 하나님 일을 맡길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고난의 고지를 점령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크게 쓰십니다. 우리도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고지를 향해 정복해 올라가야 합니다. 올라가다 좌절할 난코스가 있다 할지라도 죽어도 올리가리라는 각오로 전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죽기로 작정한 자의 손을 잡아 주십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6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