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6-03-07 00:46:16 ]
말세에는 미혹하는 마귀의 본질이 드러나니
오직 영원한 믿음이 되시는 주님만 바라봐야
디모데후서 3장 13절에 보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세에 관해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 사람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구나 서로 속이고 속으면서 살아갑니다.
모두 속이고 속으며 살아간다
예전에 단체로 중국에 간 적이 있는데 일행 중 여럿이 ‘비취’라는 보석을 사려고 흥정하고 있었습니다. 정가표에는 ‘400달러’라고 써 있었습니다. 크기나 모양에 따라 가격이 다르지만 대개 그 정도 가격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400달러짜리를 350달러에 사며 50달러나 싸게 샀다고 무척 좋아합니다. 그분이 밖으로 나간 다음에 제가 옆에 선 분께 100달러에 사 주겠다고 말하고 보석 주인에게 가서 조금 전에 산 것과 똑같은 것을 100달러에 사겠다고 했더니 당연히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제가 “80달러면 어떻겠느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는 “100달러에도 안 파는 물건을 20달러를 더 깎느냐”며 황당해합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원가가 10달러도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80달러도 많이 받는 건데 이 정도면 얼른 팔아야지 남는 거죠”라고 아주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상인은 그때서야 ‘아, 이 사람이 보석 값을 아는구나’ 짐작하고 결국 80달러에 팔았습니다.
저는 예전에 무역회사에 근무한 적이 있는데 그때 다이아몬드를 비롯해 온갖 보석을 취급해 보아서 원가가 얼마인지 대강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알면 속지 않습니다.
그런데 400달러짜리 비취를 350달러에 샀다고 좋아하며 사간 사람은 어떻습니까? 그 사람은 모르는 만큼 속아 손해를 본 것이요, 보석장수는 속인 분량만큼 이득을 얻은 것입니다. 이처럼 가격정찰제를 시행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물건을 사고 팔면 속이는 사람, 속는 사람 둘 중에 하나는 꼭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영적 세계를 모르면 속이고 속는 불행의 쳇바퀴를 돌게 됩니다.
성질나서 혈기를 냈다가도 조금 있다 보면 ‘내가 조금만 참았으면 되는데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네’라고 생각합니다. 벌써 혈기 내게 하는 악한 영에게 속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 교인들도 목사를 많이 속입니다. 자기들끼리 있을 때는 주의 일을 아무렇게나 하다가 목사만 나타나면 잘하는 척합니다. 이게 속이는 것입니다.
‘속인다’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만 뜻하지 않습니다. 우리 삶을 항상 진실점에 두지 못하니까 자기 스스로 속고, 환경에 속고, 기분에 속고, 감정에 속고, 혈기에 속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속이거나 속으며 살아갑니다.
말세에 드러나는 세상의 본질
목회하기 전의 일입니다. 한번은 회사에서 물건을 만들려고 공장에 주문을 넣었습니다. 잘 만들어 미국의 거래처로 샘플을 보냈더니 클레임이 걸렸습니다. 이런 물건으로는 거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샘플을 가져다 아무리 봐도 주문한 그대로 만들었는데 이상해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귀사가 요구한 것과 똑같이 만들었는데 왜 안 된다고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대답은 “무게가 2그램이 덜 나가서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울에 달아 보니 딱 2그램이 부족합니다. 무게가 덜 나가는 만큼 속인 것입니다. 2그램이면 고작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그 정도도 그냥 넘어갈 수 없을 만큼 정밀한 물건을 원했습니다. 속이고 싶어서 속인 것이 아닙니다. 세상살이에서 말하다 보면, 또 거래하다 보면 자연스레 속이고 속게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성장하며 부모를 속이기 시작합니다. 또 저도 목회를 하다 보면 저를 속이는 성도들을 봅니다. 혹은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면서 스스로 속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아무리 참말을 해도 언젠가 속인 분량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말세에 속이는 세상이 온다는 말은 말세에는 속고 속이는 세상의 본질(本質),본성(本性), 본능(本能)이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감출 수 없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전부 다 속이고 속습니다. 모두 속고 속으며 살아갑니다. 우리 세상은 단 한 가지도 속이지 않는 것이 없고 속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 천지간에 속지 않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전지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 말씀은 영원히 속이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만 우리의 믿음이 될 뿐, 세상은 믿을 수 없습니다. 공의로운 하나님은 정확하시기에 오직 그분만이 속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뿐입니다.
속이는 자와 속는 자, 똑같이 망한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고 속이는 마귀에게 미혹돼서 선악과를 먹어 영육 간에 멸망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최초에 속이는 자는 마귀였습니다.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속이고 죄를 짓게 하여 자기에게 속하게 하였습니다. 언뜻 보면 마귀가 성공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일로 죄는 마귀에게서 들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고 결국 마귀는 죄의 본질이요, 죄의 원작자로서 심판받아 영영한 불에 들어가 세세토록 고통받게 되었습니다(요일3:8, 마25:41). 결과적으로 마귀 자신만 얼마나 큰 손해를 봤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아담과 하와는 속아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저주를 받아 아담은 종신토록 수고해야 먹을 수 있게 됐고, 하와는 잉태하는 큰 고통을 더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녕 죽으리라”(창2:17)고 하는 죽음이 오고 말았습니다. 마귀는 속여서 망하고 아담과 하와는 속아서 망했습니다. 이처럼 속이는 자도 망하고 속는 자도 망하니 세상은 속이는 자와 속는 자가 함께 망하는 겁니다. 이 세상에 어디 한 군데 믿을 곳이 있는지 보십시오. 단 한 곳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속이지 않고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과 거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7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