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6-04-05 10:58:53 ]
아브라함과 같이 주님 말씀에 확신 가지고
그 뜻만 좇아야 최후에 살아남을 수 있어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너는 항상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한 말은 다시 말해 “네가 배운 하나님 말씀을 확고히 믿으며 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확신을 가진 아브라함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본토 아비 친척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시고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12:1~3)고 약속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정든 하란 땅을 떠나려 할 때 분명 그곳 사람들이 말렸을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아브라함의 행동이 미련하고 답답해 보였을 테니까요. 부친 대(代)에 어렵사리 정착한 땅을 떠나는 것은 물론, 어느 곳으로 갈지 정처도 없이 무작정 먼 길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해 보였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으로서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확신했기에 정든 하란 땅을 등지고도 아무 걱정 없이 나그넷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머리로 판단해서 ‘가도 된다’ ‘안전하다’ ‘뭔가 유익이 있다’고 확신할 때 움직입니다. 우리는 이런 확신을 신념이라고 말합니다.
확신에는 신념(信念)과 신앙(信仰) 두 가지가 있습니다. 신념은, 사람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머리로 판단해서 자기 의사로 뜻을 정해 굳게 믿는 마음가짐을 말합니다. 그에 비해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삶 전부로 삼아 순종하고 받드는 태도를 말합니다.
하란을 떠난 지 20여 년이 흘러 어느덧 아브라함의 나이 99세가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도 아브라함과 아내 사라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육신의 생각대로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고 그에게 자신의 대를 잇게 할 생각이었습니다. 이미 나이 많은 자신과 아내 사라에게는 자녀를 낳을 소망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내년에 사라를 통해 반드시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약속하시고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17:1~22).
얼마 지나지 않아 아브라함은 낯선 사람 셋이 자신의 장막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보자마자 모든 예의를 갖추어 자기 장막으로 모셔서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였습니다. 그들이 식사를 마치고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18:10).
당시 사라의 나이는 89세였습니다. 사라가 장막 뒤에서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웃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내 사라가 왜 웃으며 자기가 늙은 몸으로 어떻게 아들을 낳겠느냐고 하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함이 있겠느냐?”고 엄히 말했습니다(창18:1~16). 당시 사라는 경수가 말라 생리학적 상식으로는 자녀를 생산할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말씀 그대로 확고하게 믿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브라함이 100세 되던 해에 아들을 낳았습니다(창21:1~7).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런 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인간의 논리나 이치에 맞는 합리적인 조건이 아닌 하나님 말씀을 확고히 믿고 순종할 때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라
이삭이 성장해서 청년이 될 무렵,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또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너는 네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내게 번제로 바쳐라”(창22:1~2).
번제는 제물의 목숨을 끊고 각을 떠서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태워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지체 없이 다음 날 일찍 일어나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갔습니다. 도중에 이삭이 물었습니다.
“아버지, 장작도 있고 불도 있는데 하나님께 번제로 드릴 양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오는 아들의 질문을 듣는 애비의 마음이 얼마나 착잡했을까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하란을 떠나라고 했을 때 “너로 큰 민족을 우리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창12장)고 하신 말씀과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 같을 것”(창15:5~6)이라고 하신 약속이 꼭 이루어진다고 확신했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께서 지시한 곳에 이르자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묶어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려고 말입니다. 칼을 빼서 아들의 목숨을 끊으려고 손을 높이 든 순간, 하나님께서 급히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제지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다시 한 번 놀라운 약속을 하셨습니다.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22:16~18).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독자를 드리는 믿음을 보시고 자신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에게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하신 약속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이삭은 죽지 않았지만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피 흘려 죽으시고 우리를 죄와 저주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이 신앙의 확신을 가지고 내가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뜻을 좇아야 합니다. 마지막 때는 하나님을 향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자만 최후에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님의 신부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7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