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 ‘마지막 때는 이러하니’(123)] 말세에 책망받을 것 없이 바르게 살라

등록날짜 [ 2016-07-07 10:16:05 ]

최후 심판대 앞에서는 다시 돌아설 길 없으니
성경대로 못 산 부분 찾아 회개하고 돌이켜야
 
제가 어렸을 적에 우리 집 바로 윗집에 할아버지 한 분이 살고 계셨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이른 아침이면 동네 어귀에 나와 계시다가 학교 갈 나이가 되지 않은 아이들을 하나하나 불러 모으십니다. 아이들은 그 할아버지의 말씀 한마디에 꼼짝 못하고 따라갑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이런 아이가 대여섯 모이면 당신 댁 사랑방으로 데려가셔서 무릎 꿇려 앉힌 후에 방바닥에다 천자문을 펼쳐 놓으십니다.
 
“자, 이제부터 한자 공부를 한다.”
 
그러면서 천자문 한 자 한 자를 곰방대로 짚으시면서 따라 읽으라고 하십니다.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르 황”
 
동네 아이들은 볼멘소리로 한 자 한 자 따라 큰 소리로 외웁니다.
 
잠시 후, 할아버지께서 글자를 손으로 일일이 짚으시면서 묻습니다. 아이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눈만 끔벅거리며 머리를 조아립니다.
 
혼을 내셔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그 어렵고 복잡한 한자를 한 글자 한 글자 알아서 외운 것이 아닙니다. 할아버지가 읽는 소리를 흉내 내서 크게 외쳐 댄 것뿐입니다.
 
매일같이 그렇게 할아버지에게 붙잡혀 한자 공부를 하자니 한창 개구쟁이들이 죽을 맛입니다. 그 할아버지가 그저 밉고 싫기만 했습니다.
 
어느 날은 다른 때보다 일찍 일어나 할아버지 몰래 놀러 가려고 살짝 담 모퉁이를 돌았는데 울타리 밑에 서 계신 할아버지와 딱 마주쳤습니다. 그날도 여지없이 천자문을 외웠습니다.
 
왜 한자를 열심히 배워야 하는지 할아버지가 귀 따갑게 말씀해 주셔도 그저 밖에 나가 뛰어놀고 싶은 개구쟁이들의 귀에는 들려오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랑방을 빠져나갈까 궁리에 바쁩니다. ‘저 할아버지는 언제 돌아가시나?’ 하는 발칙한 고민도 여러 번 해 보았습니다.
 
세월이 수십 년 흘러 어느덧 개구쟁이가 어른이 되고 보니, 그때 그 할아버지가 동네 아이들에게 왜 그렇게 한자를 가르쳐 주려 하셨는지 그 심정을 넉넉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한 글자라도 더 배워 놓으면 세상 살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또 배운 대로 조금이라도 바르게 살아가게 하려고 그렇게 애틋한 심정으로 가르치시고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제가 만약 그때 할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그 가르침에 감사해 매일매일 열심히 한자를 배우고 익혀 그 뜻을 마음에 새겼을 텐데 말입니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 상대가 누구든 듣고자 하는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지나가는 말’이라도 천둥 치는 듯한 책망으로 들어야 합니다. 가만가만 하는 소리도 깊이 깨달아 매사에 잘못된 것은 버리고 좋은 것은 장려해서 항상 하나님이 이끌어 가는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디 가든지 거침없이 내 잘못을 지적하는 자에게 “감사합니다” 하고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다시는 잘못된 길로 가지 말고 바른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이 바라시는 것입니다.

책망받을 기회를 놓치지 말라
마태복음 25장 14~30절을 보면 달란트를 맡긴 주인과 그의 종들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다. 주인이 세 명에게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기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 세월이 흘러 주인이 돌아와 보니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자는 그 돈을 밑천 삼아 장사해서 거액을 남겨 주인께 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그 돈을 땅에 묻어 두었다가 주인에게 크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25:26~30).
 
이처럼 마지막 날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주님께 책망받을 때는 돌아설 길이 없습니다. 지금은 회개하고 돌이킬 기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로 살았습니까? 오늘 성경 말씀을 뜨거운 책망으로 알고 돌아설 기회, 즉 회개할 기회를 붙잡아야 합니다. 오늘날 성도들을 방종하게 내버려두지 않고 성경대로 살도록 강권하는 것은 최후의 날에 책망받을 것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말세일수록 바르게 살아야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세에는 고통하는 때가 이른다’며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이 책망으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언급한 것은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잘못한 것이 있으면 과감하게 책망을 받으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성경을 읽는 사람 중 많은 이가 하나님의 말씀을 책망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만약 책망으로 받아들였다면 하나님 말씀에 따라 즉각 자신의 잘못을 고쳤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기에 육신의 소욕과 정욕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책망을 무시하고 육신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할 정도로 당대의 의인이요 완전한 자로 인정받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은 그 시대 사람들은 모두 홍수로 멸망했고, 책망받을 만한 일 없이 하나님 뜻대로 산 노아와 그의 가족은 살아남았습니다.
 
우리도 노아 시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고 제 멋대로 산다면 영혼의 때에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는 말세일수록 책망할 것이 없을 만큼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성경 전체를 나를 사랑하시는 은혜와 책망과 사랑과 권고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지금 당장 책망받을 일을 끝내 버리고 주님 앞에 어엿이 설 수 있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8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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