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하는 예배(24)] 말씀이 제시하는 방향대로 가라

등록날짜 [ 2016-07-11 13:17:50 ]

*주제 : 말씀대로 행함, 순종 
*찬송 : 379주의 말씀 듣고서
*본문 : 창세기 222, 9~1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22:2)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22:9~13)

빛이요 진리이신 하나님 말씀은 우리 삶에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영육 간에 풍성한 축복을 받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 말씀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돌아서면 잊어버립니다. 또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일에 어려움이 닥치면 쉽게 좌절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들은 대로 행하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이 제시하는 방향대로 가기 위한 것입니다.

본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번제(燔祭)는 제물의 목을 쳐서 각을 뜨고 장작 위에 얹은 후 불로 태워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아들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곳으로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은 산 밑에 종들을 있게 하고, 아들의 등에 장작을 짊어지게 했습니다. 산 중턱에서 아들이 내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라고 묻자, 아브라함은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만 대답했습니다. 곧이어 산에 올라가서 장작을 쌓아 놓고, 그 위에 아들을 묶어 올려놓은 후 아들의 목을 치려고 칼을 빼기까지 아브라함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일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명령을 받거든 어떤 명령이든지 순종하는 일에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럴 수가 있느냐고 따져 묻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이 명령하신 일에 반드시 책임을 지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언제나 위대한 축복을 준비해 놓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자를 아끼지 않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의 독자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 구원의 희생물로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즉시 움직여서 말씀의 축복을 내 몫으로 삼아야 합니다.

혹시 말씀의 약속이 더디 이루어지더라도 조급해하지 말고 믿음의 방향으로 끝까지 전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필요한 적기에 응답으로 역사하십니다.

성경은 시험을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1:12).

우리는 하나님께서 옳다고 인정하실 때까지 견디며 말씀이 제시하시는 방향대로 끝까지 나아가 승리를 얻어 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방향을 제시하시는 하나님의 요구에 기꺼이 따르고 실제로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기도: 주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즉각 행동할 수 있는 믿음을 주세요. 어떤 어려움과 시험이 올지라도 인내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힘 주시고 능력 주셔서 기어이 그 말씀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누구나 함께하는 예배

윤석전 목사 저

위 글은 교회신문 <487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