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6-12-08 11:39:10 ]
예수님은 부·명예, 한시적 영광이 아니라
영원한 영광을 주려고 십자가에 달리셨으니
회개로 죄를 해결하고 예수를 독점해야
십자가의 두 강도
예수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려 골고다 언덕 위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며 죽음의 고통을 당할 때였습니다. 예수님 좌우편에는 강도 둘이 자신들의 죗값대로 십자가에 매달려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최악의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쪽 강도가 죽음의 문턱에서 예수를 비방하며 희롱합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눅23:39). 그러자 다른 쪽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가 그를 꾸짖습니다.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눅23:40~41). 그리고는 예수님을 향해 말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눅23:42).
예수를 비방한 그 강도도 속으로는 메시아라는 예수가 이적을 일으켜 당장 그 참혹한 십자가에서 자기들을 내려주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만약 예수께서 그 강도의 소원대로 십자가에서 내려오셨다면, 우리 인류는 죄를 사함받지 못해 모두 죽어 죗값으로 지옥 갈 수밖에 없는 신세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려 묵묵히 죽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대신 죽어야만 인류가 죄를 사함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편에 달린 강도는 예수께서 죄 없는 분이신 줄 알았습니다. 죄 없는 예수가 죽어 낙원(樂園)에 이르면 자기를 불쌍히 여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자기가 범한 죄로는 음부의 고통을 피할 길이 없지만, 예수가 자기를 생각해 준다면 그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런 믿음을 가진 강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잔인한 고통 속에 죽어가면서도 그 강도를 생각해 주셨습니다. 또 죄로 지옥에 가서 영원히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생각하시고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려던 영광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제자들은 의아했을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 예수께서 보이신 전능한 힘, 즉 수많은 질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쫓고 죽은 자를 살린 그 절대자의 엄청난 능력이 어디로 갔기에 무능하게 십자가에 달려 잔인한 고통을 당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을 터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로마제국에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 자기들은 예수님 좌우편에 앉아 명예와 권력을 누릴 줄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이 마주한 현실은 예수께서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이 결박당한 채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처참히 죽어가는 것이었습니다. 3년 동안 예수를 좇아 다녔던 일이 허망하여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실망했을 테지만, 반대로 예수께서는 자신을 3년간 따르면서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제자들이 스승이 잡혀가자 뿔뿔히 흩어져 도망하고 심지어 수제자는 작은 비자 앞에서 저를 도무지 모른다 세 번이나 부인할 때 말할 수 없이 실망하셨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 높은 관직에 앉아 권력과 명예와 돈을 누린들 육신이 살아 있는 동안뿐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런 한시적인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 좌우편에 앉는 영원한 영광을 소유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힘이나 능력이 없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또 우리에게 세상 부와 명예를 주시려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라시면서, 잔인한 십자가 처형의 고난을 참고 견디셨습니다. 우리가 죄 사함 받아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영광을 누리며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기쁨을 위해서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뒤집어쓰고 강도보다도 못한 취급을 당하고 죽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손해를 당하더라도 예수께서 죽으신 십자가 앞에 우리 죄를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 보혈에 의지하여 회개할 때 세상 무엇보다 큰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예수는 회개하는 자를 위해 준비된 분입니다. 회개하는 자를 지옥과 저주에서 해방시키려 준비된 분입니다. 죄를 회개하여 예수를 독점하시기 바랍니다.
죄인임을 고백할수록 넘치는 생명
죄는 하나님의 원수요, 나의 원수입니다. 하지만 그 죄를 지어 지옥 갈 신세가 되었기에 우리가 예수를 만났습니다. 사도 바울은 죄로 말미암아 끝없이 생각 속에서 싸우지만 오히려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죄에서 벗어나려고 날마다 예수의 십자가 피의 공로를 붙잡고 회개하기에 예수와 더불어 살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죄를 지은 바람에 우리는 예수의 생명을 독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죄인을 옥에 가두고 형벌을 가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큰 죄인임을 자백할수록 예수를 통하여 우리에게 영원한 나라를 기업으로 주시니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믿는 신앙은 세상 지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모순(矛盾)처럼 보입니다. 세상은 죄인이라고 고백할수록 형량을 무겁게 하지만, 예수 안에서는 죄인임을 고백할수록 죄가 사라집니다. 죄인이라고 고백하면 죗값으로 죽어야 하는데, 오히려 죄를 회개할수록 생명이 살아납니다. 큰 죄를 회개할수록 예수는 자기 생명을 넘치게 공급하십니다.
예수는 자신이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자에게 오십니다. 우리는 감사하지 못하고, 기뻐하지 못하고, 섬기지 못하고, 충성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하고, 전도하지 못하고,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한 죄인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죽으심을 당신의 것으로 소유하여 영원한 기쁨을 누리길 바랍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50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