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 주제 설교 ‘회개하라’(12)] 회개하여 내 영혼의 갈망을 충족시켜라

등록날짜 [ 2016-12-14 14:13:12 ]

죄를 적당히 넘어가거나 용납지 말고 모두 회개해야
죽어가고 있는 영혼의 갈망하는 욕구를 충족시켜


회개가 필요한 시대
나라가 큰 어려움에 처했을 때 목사가 강단에서 “회개하라”라고 설교하면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면한 현안을 해결하기에 바쁜데 왜 죄의식을 부추기느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나라에 크나큰 위기가 닥칠 때마다 근본적인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사치하고 낭비하고 쾌락에 빠져 죄의 더미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혼율, 자살률이 세계적인 순위에 오르고, 부모를 봉양하는 미풍은 사라지고 이웃 간에도 각박해져 ‘이웃사촌’이란 말을 듣기 어렵습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심이 참 후했습니다. 농촌에서는 앞집에서 콩을 볶거나, 고구마를 찌면 꼭 가져다줄 줄 알고 기다렸습니다. 지금은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아무리 작은 물건이 내 집에 넘쳐도 웬만하면 팔지 그냥 주는 법이 없습니다.

지금은 형제간에도 인정머리 없는 세상이 됐습니다.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인정머리 없고, 그저 자기 육신 하나 아끼며 사치·낭비하고 향락과 쾌락을 즐기는 것이 바로 죄악입니다. ‘죗값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롬6:23). 사람이든 국가든 죄가 쌓이면 결국 멸망의 길을 걷습니다.

우리나라가 국가적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먼저 신앙 양심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하기 전에 하나님이 자원해서 도와주시도록 신앙양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신앙 양심을 회복하려면 예수의 십자가 피의 공로 앞에 죄를 회개하는 길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국가에 위기가 닥치면 먼저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라고 일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한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대하7:13~14). 우리나라가 이 어려운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나는 유일한 비결은 죄를 회개하는 방법뿐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죄를 용납하지 않는다
다른 일은 인정사정 봐줄 수 있어도 죄를 용납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죄가 나를 죽이고, 저주로 몰아넣고, 마귀 종노릇하게 하고 결국 영혼의 때에 영원히 불타는 지옥에 빠뜨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사는 성도들이 죄짓고 망할까 봐 하나님 말씀을 조목조목 들어가며 죄를 지적하고 회개하라고 애절히 설교합니다. 죄짓지 말라는 외침은 사랑의 목소리입니다.

어떤 잘못이라도 적당히 덮어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죄를 덮어줄 수 없습니다. 입장이 아무리 곤란해도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여 죄를 분리시켜 주어야 합니다. ‘회개하라’는 말은 죄를 분리하라는 선언입니다. 죄를 끄집어내서 그 죄로 말미암아 저주와 사망과 지옥 형벌이라는 결과를 맞지 않도록 회개하여 살게 해 주어야 그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예수 믿는 신앙을 박애주의처럼 인정이나 애정을 중시하거나 윤리나 도덕을 지키는 것으로 오해하지 마십시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은 죄를 적당히 용납하고 넘어가지 않습니다. 죄는 경중 없이 사망이니까요(롬6:23). 하나님은 죄를 적당히 용납하고 넘어갈 수 없으셨기에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인류의 죄를 대신 갚아주시는 대속의 은총을 허락하셨습니다. 만일 적당히 죄를 용납하고 무마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와서 그토록 잔인한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죄는 아무리 적어도 적당히 용납하고 넘어갈 수 없습니다. 죄를 지적하고 예수의 십자가 피 공로 앞에 회개해 사망인 죗값을 예수의 피로 사함받고 죄를 모두 분리해서 죽어 가는 자를 살려내야 합니다.


내 영혼이 갈망하는 욕구
저는 길을 지나가다 옆 사람에게서 살려 달라고 외치는 ‘영혼의 소리’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멀쩡히 걸어가는데 그 속사람인 영혼이 저더러 제발 자기를 전도해 살려달라고 아우성칩니다. 속사람은 겉사람이 죽으면 자기 영혼이 죗값으로 영원히 멸망할 지옥에 갈 것을 훤히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속사람인 영혼이 발버둥 치듯 살려달라고 애원하는데도 정작 겉사람은 자기 영혼이 갈망하는 외침을 듣지 못합니다. 육체가 사는 데 양식이 필요하듯, 영혼이 사는 데도 양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래 살아도 백 년 사는 육체가 편히 사는 것보다 영원히 중요한 일은 죗값으로 지옥에서 영원히 살아야 할 영혼이 예수의 피 공로로 죄사함받는 것입니다. 그 영혼이 갈망하는 요구를 깨닫고 충족시켜 주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당대에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로마 시민권자요, 유대 공회원이요, 당대 최고 석학 가말리엘 문하생이니 어디를 가도 막힘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기 영혼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요청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다 예수를 믿는 자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던 중, 신성모독죄로 십자가 형을 받고 죽은 나사렛 예수가 “바울아, 바울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라는 목소리를 듣자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고 드디어 자기 영혼의 욕구를 깨달았습니다. 율법을 행함으로가 아니라 예수 십자가의 피 공로를 믿음으로 영혼이 죄 사함받고 구원받는다는 영적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자기처럼 예수 몰라 지옥 갈 인생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온갖 고통과 어려움을 당해도 목숨을 걸고 예수를 전하여 죄로 지옥 가는 영혼의 욕구를 채워 주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마침내 순교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 영혼의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자기 목숨을 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 영혼을 죽이고 지옥 보내는 죄를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회개하여 자신의 피와 살을 먹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래야만 우리 영혼의 굶주린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에 주린 자가 되어 회개하여 당신 영혼이 갈망하는 욕구를 채워 배부르기를 바랍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50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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