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 주제 설교 ‘회개하라’(14)] 회개한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가짐

등록날짜 [ 2016-12-26 14:18:36 ]

회개로 지옥 신세를 면한 자는 구원받은 은혜의 분량 알기에 주님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아

회개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구원
절대 공의(公義)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예외 없이 하나님의 법대로 판결하십니다. 우리 인류는,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명하신 선악과를 먹어 정녕 죽게 된 아담의 후손이기에 조상 아담의 원죄를 안고 태어났고, 그에 더하여 각자 지은 자범죄도 짊어져서 원죄와 자범죄를 심판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면,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라는 법에 따라 ‘영원한 지옥 형벌’의 판결을 받습니다. 세상 법의 효력은 시공간에 제한받지만, 하나님 법의 효력은 영원에 미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죄를 지었다고 어찌 지옥에 보낼 수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아무리 사소한 죄를 지었을지라도 하나님의 공의의 법 앞에는 경중 없이 영원한 사망과 지옥이라는 심판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죗값으로 영원히 불타는 지옥 심판을 받을 우리 인간이 살아날 방법은 없을까요? 만약 100억 원 빚진 자가 그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면, 누군가 그 빚을 대신 갚아 주어야만 그는 채권자의 억압에서 해방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죗값은 사망’이므로 죽어 지옥 갈 내 죄를 누군가 대신 짊어지고 죽어서 사망을 갚아 주기만 하면 나는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육신을 입혀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고 우리의 죗값인 사망을 갚아 주셨습니다. 또 누구든지 그 사실을 믿으면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사랑입니다.

따라서 구원받으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으면 됩니다. 교회에 왔다 갔다 한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사람의 공로나 수고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께서 흘리신 피의 공로를 믿고 죄를 회개할 때 영혼이 구원받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죄를 회개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죄 없는 예수만 죄인의 죄를 대신 짊어질 수 있어
이방 종교인들은 양심에 가책을 받아 죄를 뉘우치기는 하나 진정한 회개를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회개할 때 내놓은 죄를 대신 갚아 주어 죄 없게 할 거룩한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가 남의 죄를 갚아 주려고 자기 목숨을 내주겠습니까? 설사 내주었다 하더라도 아담의 후예로서 죄인인 우리 인간은 누구도 자기 생명을 다른 사람의 죄와 바꿀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기에 자기 죗값으로 죽어야 합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을 수 없습니다.

죄 없는 사람만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질 수 있습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만이 자기 생명을 내가 갚아야 할 죗값과 바꿔 줄 수 있습니다. 회개하는 사람에게 그의 죄와 자기 생명을 바꿔 주셨습니다. 예수 앞에 죄를 내놓는 것은 살려는 몸부림입니다. 그래야 예수의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배고플 때 자장면 한 그릇 사 줘도 감사해서 더 좋은 것을 대접하고 싶어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죗값을 갚으려고 대신 죽고 자기 생명을 주셨다고 할 때, 얼마나 감격하고 감사해서 주를 위해 죽도록 충성하고 싶겠습니까? 내 목숨 다해 주의 복음을 전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신앙 양심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주를 위해 할 일이 무엇인지를 찾습니다. 신앙 양심을 간직한 사람은 주님 은혜 앞에 어떤 어려운 일이든지 못한다고 거절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회개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회개한 사람은 주님의 요구에 어떤 부담도 없다
회개는 죄, 사망, 지옥, 저주를 내놓는 것을 말합니다. 그 대신 영생과 천국과 하나님 자녀의 신분을 받았다고 할 때, 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회개한 사람은 세상 방식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복을 받습니다. 그러니 그분이 당신에게 무엇을 요구한들 시험에 빠질 일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주의 일에 부담을 느낍니다. 새벽기도, 십일조, 주일성수 등 신앙생활이 모두 부담스럽습니다. 반면에 뜨겁게 회개해 예수를 얻은 감격을 아는 사람은 주의 일에 절대 부담스러워 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합니다. 피조물이요 죄인에 불과한 우리 인류를 살리려고 자기 목숨을 버려야 했던 주님은 얼마나 부담스러우셨을까요? 주님께서는 하늘 영광을 모두 버리고 죽으러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예수 몰라 지옥 갈 영혼 구원을 위해서 돈 몇 푼 헌금하는 일에 부담을 느낀다면, 이 얼마나 초라합니까?

부담이 있다면 주님의 부담이 비교할 바 없이 클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매 맞고, 저주받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셨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주셔야 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순간에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어 책임지고 양육해야 하고, 하늘나라도 상속해 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그분이 내놓을 것이 이렇게 엄청납니다. 이렇게 큰 것을 얻어 놓고, 주님께서 달라고 할 때 싫다고 하는 사람은 회개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주님이 어떤 요구를 해도 거절할 수 없는 큰 은혜를 받고도 주님 앞에 아까워하는 모습을 볼 때 안타깝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아들도 자기 목숨을 주셨다면 우리는 잠시 살다가 죽을 목숨은 물론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어떤 것도 아까울 것이 없어야 합니다. 초대 교인들은 주님이 무엇을 요구해도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자기 목숨도 기꺼이 부담 없이 내어 드렸습니다. 이같이 우리는 주님이 쓰시겠다고 할 때 무엇이든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한 사람의 자세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50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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