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7-05-02 18:53:42 ]
인류를 사랑하신 아버지의 사랑을
예수의 죽음을 통해 친히 보이셨으니
회개하여 그 사랑을 소유해 내 몫으로 삼아야
잘못된 신비주의 좇지 말고 예수의 생애를 가지려고 하라
어떤 사람은 기도 중에 환상을 보거나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면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그런 환상이나 음성은 개인이 얼마든지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신비한 체험을 하지 않아도 신앙생활 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환상을 보지 않아도, 주님의 음성을 듣지 않아도 우리 안에 주님을 성령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사시면서 하나님 말씀을 이루신 생애 전부를 우리에게 주셨으니, 그에 비하면 환상이나 음성은 매우 작은 부분에 불과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보고, 듣는 것을 맹종하며 신비주의를 좇다가 이단이나 거짓 선지자에게 미혹 당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환상을 보고 음성을 들었다고 해서 신앙생활에 들떠서는 안 됩니다. 만약 성령의 역사로 신비한 일을 보고 들었다면 감사한 일이로되, 그런 체험이 없어도 부러워할 일은 아닙니다.
은행 직원이 업무상 거액을 매일 만지고 봐도 그 중 단 한 푼도 자신의 것은 아닙니다. 비록 통장 잔고가 소액일지라도 명의가 내 것이라면, 내 마음대로 필요에 따라 쓸 수 있으니 그것이 실속 있습니다. 신비스러운 일을 보고 듣기보다 예수를 자기 몫으로 소유한 자가 진정 복받은 신앙인입니다.
환상을 보고 기뻐서 흥분한다면, 성경 속에 나타난 예수의 생애를 우리에게 모두 가지라고 주셨으니 우리는 얼마나 기뻐하며 흥분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예수의 생애를 통해 모두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를 죄와 지옥과 사망에서 구하시려고 예수의 생애를 우리가 영원히 소유해야 할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그것이 환상이나 음성보다 억만 배 위대하고 거룩하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생애 전부를 가졌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
요한복음 14장 8절 이하를 보면,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님을 보고 싶어 하던 빌립은 예수께 부탁했습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그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14:8~9).
하나님은 영이시며 비(非)물질이시요, 무(無)형상이십니다. 손에 잡히지도, 귀에 들리지도,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말씀으로 나타내셨으니 그 말씀의 운반자가 선지자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택하여 부른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목소리를 하나님의 목소리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선지자를 오해하고 핍박하고 때로는 죽여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더는 변명할 수 없도록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께서는 죗값으로 지옥형벌을 피치 못할 인간을 구원하실 뜻을 세우신 하나님 아버지의 가슴에 맺힌 사랑을 모두 알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성품을 예수도 똑같이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을 보여 주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시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을 나타내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죽은 자를 살리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냈습니다. “회개하라”고 외치는 예수의 목소리도 결국 하나님 아버지의 목소리입니다. 따라서 예수를 본 자는 하나님 아버지를 본 것입니다. 아들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보고,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예수를 통해 보이신 아버지 사랑
복음서를 읽으면서 예수의 사건이 이천 년 전 유대 땅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내게 체험된 사건이라는 사실을 알 때 엄청난 감동을 받습니다. 예수께서 채찍에 맞으시고 저주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시고, 예수 이름을 내게 주신 사건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사건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류를 구원하실 수 없기에 그토록 뜨겁게 사랑하셨다는 표현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자신이 직접 인간을 향한 사랑을 다 드러내어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을 보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능력을 확실히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보여 주신 것은 우리가 예수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인류의 모든 죄를 해결하시고 자신의 생애를 소유하라고 주셨습니다. 이렇게 큰 예수의 생애를 주신 것은 영화 관람하듯 하라고 보여 주신 것이 아닙니다. 믿고 소유하라고 주셨습니다.
예수의 사건이 세상에서 환산할 수 있는 돈 같은 가치가 있다면 모든 사람이 가지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눈에 보이는 육신의 가치가 없기에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습니다. 오직 믿는 자들에게만 지구상의 어떤 것보다 최고의 가치를 지닙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신 말씀은 이론이나 지식이 아닌 실제입니다. 말씀은 듣기만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믿고 소유하라고 주셨습니다. 말씀 속에 있는 모든 약속은 믿는 자의 몫입니다.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8)고 하셨으니 손을 얹으면 저주받은 질병이 떠나갈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고 하셨으니 기도하면 응답을 얻습니다. 이같이 성경 전체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요, 몫입니다. 성경 속에 있는 말씀을 펼쳐볼 때마다 말로만 아니라 실제로 내가 갖고 누릴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믿어 자기 몫을 삼기 바랍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52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