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실권을 인정하라(3)] 모든 불가능 해결하고 영생을 주시는 천국의 왕

등록날짜 [ 2017-06-27 14:47:28 ]

왕을 간절히 기다렸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천국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해야
예수는 죄와 저주, 모든 불가능을 단번에 해결한 영생을 주시는 분
왕이신 예수를 모신 성도는 영원한 천국 부유 누리게 돼


왕을 향한 간절함
우리 일상에 별 어려움이 없고 아쉽지 않을 때는 도움의 손길이 간절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불가능이나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절망에 빠졌을 때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누군가가 도와주길 애타게 기다립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를 모르고 세상에서 살 때는 예수가 아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 내 힘으로 도무지 해결 할 수 없는 죄와 저주와 사망의 사슬에서 풀어 줄 절대자가 예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면 그때부터 오직 예수만 열망하고 갈망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망과 불가능의 사슬을, 힘 있는 권세자 예수만 능히 해결하신다고 할 때 그분에게 도움받고자 하는 기대는 간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신정국가였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사사나 왕, 선지자나 제사장에게 계시돼 하나님에게 통치받았습니다. 그런데 말라기 선지자를 마지막으로 더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이후 40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하나님과 단절되자, 이스라엘 민족은 고된 종살이와 식민지 생활을 겪었습니다. 그러자 자기 조상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인도받으면서 살 때 영육 간에 부유를 누리던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그리워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주권자이자 왕이신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리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특히 로마 식민지 생활을 하면서 왕에 대한 그리움이 최절정에 달했습니다. 왕이신 구세주가 속히 오셔서 식민 생활에 처한 자신들을 구원해 주기를 고대했습니다. 절대 권세자인 왕과 함께 있으면 목마르거나 배고프거나 헐벗거나 어려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기 민족 역사를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죄에 매이고, 악한 영에 매이고, 병들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은 주님과 단절되어 영적 식민지에 놓인 사람들입니다. 왕이신 하나님과 단절되어 결박과 굶주림, 절망과 저주에 직면한 이스라엘 백성과 같습니다. 그렇기에 영적 식민지에서 풀어 줄 왕에 대한 그리움으로 충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배고픈 사람이 음식을 사모하고, 헐벗은 사람이 입을 것을 애타게 찾는 것처럼 왕을 잃어버렸다면 간절하게 왕을 찾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우리의 죄와 저주와 질병과 고통과 죽음을 해결하러 오신 예수를 간절히 찾게 됩니다. 그분은 나를 죄에서, 질병에서, 저주에서, 악한 영에게서 해방시켜 줄 왕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부유를 주시는 왕
현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가 발달했지만, 과거에는 왕의 생각대로 국정을 움직였습니다. 왕이 바뀔 때마다 나라의 경제 구조, 산업 구조, 교육 구조, 군사 구조가 어느 정도씩 바뀝니다. 문화나 예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왕의 역량에 따라 나라가 부강하게 되거나 가난하게 됩니다. 전적으로 왕의 역량입니다. 만약 왕의 역량이 부족해 나라가 위기에 처한다면 온 국민이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절대 가난과 고통으로 몰아넣는 왕이 아닙니다. 주님은 영원한 부유로 충만하신 왕이요, 우리 영혼의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생명보다 큰 부유가 돈입니까, 명예입니까, 권력입니까? 만약 강도가 권총을 들이대고 “목숨이 아깝거든 돈을 내놔라”고 할 때 목숨 대신 돈을 택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100년 남짓 살다가 죽어야 할 목숨을 지키려고 물질을 다 포기할 수 있다면, 물질을 참부유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물질은 목숨 앞에 무가치한 것이요,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합니다. 명예나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서 사는 목숨보다 더 큰 부유가 영원히 사는 생명, 곧 영생입니다. 영생의 부유로 충만한 왕인 예수께서 우리에게 영생과 천국의 부유를 주길 원하십니다. 또 하나님 말씀을 지키다 죽는 자는 영생이 그의 몫이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노릇한다고 했습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이는 첫째 부활이라”(계20:4∼5). 그래서 영적으로 부유한 사람은 자기 육신의 목숨보다 왕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을 더 값지게 여깁니다.

요즘 기독교인이 점점 줄어든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어도 별것 없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이는 믿음으로 얻는 영생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왜 다 똑같이 예수를 믿는데 누구에게는 별것이 있고 누구에게는 별것이 없을까요?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별것은 바로 목숨과 바꿔도 아깝지 않은 예수로 얻는 ‘영생’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되 이 지구에서 얻을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 영원한 부유로 충만하신 왕인 예수를 믿어 영원한 부유를 가져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53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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