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실권을 인정하라(4)] 죄로 박탈된 영적 권리 회복을 위해 오신 왕

등록날짜 [ 2017-07-04 13:49:16 ]

예수를 내 정욕의 욕구 충족을 위한 왕으로 오해해서는 안 돼
잃어버린 영권을 회복하러 오신 왕이신 것을 바로 알아야


예수를 오해한 사람들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를 마지막으로 사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번도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았는데, 드디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마4:17) 하는 예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유대인들은 ‘드디어 로마는 무너지고 하나님 나라가 건설되는구나. 그 나라가 바로 유대 나라가 아니겠느냐?’ 하며 희망에 부풀었습니다.

더욱이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보이신 기사와 이적은 놀라웠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막6:30~44), 죽은 자를 산 자같이 불러냈으며(요11:43~44), 병든 자를 말씀 한 마디로 고치고(마8:3), 귀신을 쫓아내고(마9:32~33), 소경을 보게 했습니다(막10:46~52).

그 모습을 보며 유대인들은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로마의 압제에서 갖은 고생을 다 했는데, 예수를 우리 유대 민족의 왕으로 세워서 지긋지긋한 로마 식민지 생활을 청산하고 국권을 회복하자.’

그래서 예수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드디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왕이 되겠다 싶어 기뻐 춤추며 종려 가지를 흔들고 호산나를 부르며 열광했던 것입니다. 그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할 메시아 예수로 인해 이스라엘 국권이 회복될 것이라는 기쁨과 기대감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더니 사람들에게 붙잡혀 십자가에 달려 힘없이 죽으셨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실망했으며 허탈감은 또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들은 예수를 로마의 식민지 생활 속에서 국권을 회복시키는 세상의 왕으로 오해했습니다.

이는 비단 그 시대 유대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를 좇던 사람들도 예수에 대해 계속해서 실망합니다. 3년여를 예수와 함께 다닌 제자들도 예수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였다면 우리 민족은 농사를 짓지 않아도 살겠구나. 조상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겠구나’ 하며 굉장한 희망과 포부를 가지고 예수를 왕으로 삼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그가 붙들려 십자가에서 힘없이 죽으니 예수를 좇던 제자들과 수많은 사람이 실망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오신 목적을 오해하지 말라
예수가 잡히신 후 채찍에 맞으며 심문받던 가야바의 바깥뜰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 아들인 그리스도가, 죽은 자를 살리고 귀신을 쫓아내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문둥병자를 고치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소경을 보게 하던 능력자가, 어떤 불가능도 다 해결하던 그분이 사람 앞에 무릎을 꿇고 저렇게 매를 맞는가? 정말로 실망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으면서도 예수가 하시는 일을 이해하지 못한 베드로는 자신을 알아본 비자 앞에서 예수의 제자라는 사실을 세번이나 부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사역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 믿으면 잘산다. 예수 믿으면 사업이 성공한다. 예수 믿으면 부자 된다”라며 그것이 예수 믿는 일의 전부인 양 오해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식이 대입 시험에 떨어지고, 하던 사업이 잘 안되면 예수 믿어 봤자 되는것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 믿기 전보다 하던 일이 더 안 된다면서 예수를 버립니다.

하지만 예수는 가정의 경제권을 회복시키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육체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오신 분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는 인류가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렸던 신령한 영권을 회복시키러 오신 분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절대로 예수에 대해 실망하지 않습니다. 영권을 회복시키러 오셨다는 사실에 만족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다가 실망하는 사람은 예수의 사역을 모르고 예수를 많이 오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는 우리를 실망시킨 사실이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분을 실망시켰고 그분의 눈에 눈물이 흐르게 했고,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가야바의 안뜰에서 모진 매를 맞으시던 예수가 자신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제자를 보고 얼마나 실망하셨겠습니까?

‘네가 죽을지언정 나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하더니, 네 목숨 하나 부지하기 위해서 나를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느냐? 내가 실망했다.’

나도 주님도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실망할 때 주님은 더 실망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대학은 공부 열심히 하면 갈 수 있고, 사업은 수완이 좋으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죄에서, 저주에서, 질병에서, 가난에서, 악한 영에게서 건지고, 죽어 가는 영혼을 살리는 능력은 그분에게만 있습니다.

영권 회복을 위해 오신 만왕의 왕
그가 채찍에 맞으시는 순간, 그는 우리를 질병에서 건지는 치료의 왕이 되셨고, 그가 저주를 받으시는 순간, 그는 우리를 저주에서 건지는 왕이 되셨습니다. 또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순간, 우리를 죄에서 건져 내는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예수가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시간은 우리를 실망시키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기쁨과 영광이 되는 시간입니다.

이런 전무후무한 큰 능력을 가진 왕이 있습니까? 이와 같은 왕이신 예수를 만난 사람이 영권이 회복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왕을 만났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그 이상 다른 만족이 또 필요합니까?

정욕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분이 필요하다면 그는 실패한 사람입니다. 이 땅에서 부자가 되고 잘살기 위해 그분이 필요하다면 그도 실패한 사람입니다. 이 땅에서 성공하기 위해 그분을 찾는다면 그 사람도 역시 실패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죄로 인해 박탈되었던 우리의 영권을 회복시키는 분이라는 절대적이고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는 우리의 잃어버린 영권을 회복시키러 오신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53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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