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실권을 인정하라(9)] 절대 주권자요 왕이신 하나님을 내 배경으로

등록날짜 [ 2017-08-17 15:12:16 ]

예수 십자가 피의 공로로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 받았으니
그것이 바로 왕이신 하나님의 권세

하나님은 자신의 실권을 인정하고 배경 삼는 믿음의 사람에게
제한 없이 능력으로 역사하셔


하나님을 배경 삼은 다윗
사무엘상 17장에 보면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을 쳐부수려고 큰 군사를 이끌고 진격해 옵니다. 기골이 장대한 거인 장군 골리앗이 갑옷을 입고 큰 창을 들고나와 이스라엘 백성을 조롱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누구도 블레셋 군대에 대적하지 않습니다. 너무도 큰 골리앗의 위세에 주눅이 들고 만 것입니다. 사울왕과 이스라엘 온 백성은 크게 놀라고 두려워하며 큰 근심에 휩싸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싸워 보기도 전에 이미 패배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때 소년 다윗이 사울왕에게 나와 자신을 골리앗에게 보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어린 다윗을 골리앗의 상대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더 힘을 주어 간청합니다. 자신이 양을 칠 때 사자와 곰에게서 양을 지켜 냈고 도리어 그것들을 쳐 죽였다고 말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곰과 사자에게서 자신을 지키셨듯이 블레셋 군대의 손에서도 지키시리라고 덧붙입니다.

사울왕은 하는 수 없이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것을 허락했습니다. 다윗은 돌멩이 다섯 개와 물매만을 가지고 골리앗 앞으로 나갔습니다.

단출하게 전장에 나서는 어린 소년을 블레셋과 이스라엘 군대가 바라볼 때 얼마나 어이가 없었겠습니까? 골리앗 역시 어린애 장난은 집어치우라는 듯 코웃음을 칩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

이윽고 다윗이 물매를 던지자 골리앗의 이마에 돌이 박혔고, 골리앗은 현장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한 나라의 최고 장수가 어린 소년이 던진 물맷돌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하지만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싸웠기에 승리한 것입니다. 전장에 있던 어느 누구도 예기치 못한 다윗의 승리였습니다.

사울도 하나님이 세운 왕이었지만 자기를 왕으로 세운 하나님의 실권을 다윗만큼 인정하지는 못했습니다. 이스라엘로 쳐들어오는 블레셋의 힘과 골리앗의 실권은 인정했는데, 이스라엘과 블레셋을 지으시고 인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절대 승리의 왕이신 하나님의 실권은 인정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실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배경 삼는 자에게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데는 다른 조건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의 실권을 얼마나 인정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움직일 때 왕이신 하나님이 함께 움직여 주고, 죽고 사는 문제에 직접 개입해 주실 정도로 하나님의 관심 안에 있어야 합니다. 곧 왕의 실권을 인정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왕이신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의 배경이 되어 주십니다.

다윗에게 역사하신 왕이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의 심령 안에 계시기를 원하고 우리의 배경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녀 된 자의 권세
전 세계에서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한 민족은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때때로 종살이, 식민지 생활을 했지만 어느 나라, 어느 민족 앞에서도 당당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당당하게 만들었을까요? 바로 하나님을 왕으로 모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니엘서 3장에 기록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사건에서 이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포로 생활 중에 온갖 모함과 천대, 핍박과 멸시를 당했습니다. 그러다 느부갓네살왕이 세운 금 신상에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풀무 불에 던져져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조금의 비굴함도 없이 언제나 당당했습니다. 세상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자신들의 왕이심을 알았고, 왕이신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절대 섬길 수 없다는, 왕의 실권을 인정하는 강한 의지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하나님이 자신들을 지키신다고 생각했지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 외에 다른 신에게는 절대 절할 수 없다고 느브갓네살왕에게 당당히 말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믿음이 얼마나 확고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오직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기 왕에게만 절개와 믿음을 지키고 그분을 절대 배반할 수 없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풀무에 던져진 후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풀무 불이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겁게 달궈졌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의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않도록 지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과 자부심이 이처럼 대단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듣고 회개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공로로 죄 사함받고 거룩해져서 성령을 받은 우리는, 왕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어떻게 모셔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절대 주권자요 왕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실 때, 자녀 된 우리에게 왕이신 아버지는 굉장한 배경이 됩니다. 예수께서는 이 배경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12).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 만물과 모든 세계를 주관하시는 왕이시기에 하나님 자녀의 권세는 곧 왕의 권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가 가지신 왕의 권세를 값없이 기업으로 이어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가진 하나님 자녀의 권세가 곧 왕의 권세임을 확실히 인지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보다 더 큰 믿음의 분량으로 왕의 실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사람이 곧 왕을 배경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53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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