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명예를 위해 하나님 떠난 자는 영혼의 때 영원한 지옥 형벌 기다려
‘죄짓지 말라’는 말씀은 사랑의 간섭
구원받은 자라면 죄와 분리돼 살아야
◆ 하나님을 떠난 자
하나님께서는 죄악으로 멸망할 어두운 세상에 있던 우리에게 영원히 살 수 있는 분명한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외에는 구원받을 만한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사실이 없다고 했습니다(행4:12). 우리는 오직 예수의 십자가 피의 공로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원한 멸망과 고통과 지옥에서 예수의 십자가 피의 공로로 구원받았으니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면서도 세상 문화에 빠져 죄악 속에 산다면 그는 예수를 지식으로만 알았든지, 아니면 귀한 것을 가지고도 귀한 줄 모르고 세월을 낭비한 사람입니다.
과거에 권력을 잡은 사람 중에는 불교 신자가 많았습니다. 그 때문에 많은 기독교인이 출세해 보겠다고 불교로 개종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 믿는 사람이겠습니까? 출세를 위해 예수를 버렸다면 그는 예수가 누구인지를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출세하든 못 하든 누구나 때가 되면 죽습니다. 정말로 우리에게 중요한 삶은 죽은 뒤에 영원히 살아야 하는 영혼의 때입니다. 언젠가 사라지고 없어질 육신의 때보다 영원히 사는 영혼의 때를 우선하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저는 여자 청년들에게 짧은 치마를 입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누군가는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현대사회는 어떤 옷을 입든지 개성을 마음껏 표현하며 사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권리를 침해해서라도 짧은 치마를 입지 못하게 말리는 것은 그것이 죄이기 때문입니다. 본인은 좋아서 짧은 치마를 입었지만 그것을 보는 남자들로 하여금 음욕을 품게 하기 때문입니다. 죄짓는 일에 원인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피해 차량이라 할지라도 고의로 사고를 야기했다면 법의 저촉을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죄를 짓도록 원인을 제공한 사람 역시 하나님의 법에 저촉을 받습니다. 우리는 이웃에게 죄지을 원인을 제공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 삶이 이웃에게 유익이 되고, 그 이웃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자기 유익을 좇다가 하나님을 떠난 자나, 이웃을 죄짓게 해서 하나님을 떠나게 한 자나 모두가 죄인입니다. 굶주린 사자가 입을 벌리고 잡아먹으려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이 하나님을 떠난 죄입니다. 죄는 영원토록 꺼지지 않는 불이 소금 치듯 하는 지옥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사랑
우리는 하나님 말씀이라는 그물로 보호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세세하게 간섭하신다면 우리에게 섬세한 사랑을 표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우리를 권면하시고 간섭하셨다고 절대로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간섭하지 않습니다. 안다고 해도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다면 간섭할 수 없습니다. 간섭할 만큼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만 간섭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으로 간섭받는 사람이라면 그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교회학교 교사를 할 때 아이들을 매우 엄하게 가르쳤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정돈된 자세로 질서 있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린데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렸고 예배 시간이 길어져도 싫증 내지 않았습니다. 비록 어린아이들이지만 하나님 앞에 바른 자세로 진실하게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무척 감사했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려서 예배 시간만큼은 살아 있는 시간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길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이들에게 더욱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또 아이들을 엄하게 가르쳤던 것은 잘못을 용납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잘못을 엄하게 다스려야 아이들이 죄가 무서운 줄 알고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이들이 믿음 안에서 진심으로 복받기를 바라는 간절한 사랑이었습니다.
보통 가정에서 부모가 아이들을 엄하게 가르친다면 불의를 행한 자녀를 고쳐 주기 위해서이지 아무 때나 엄하게 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만큼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교사가 제자를 엄하게 가르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때문에 죽게 된 우리를 위해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게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43:1).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를 죄에서 분리시켰고, 죄에서 자유케 했다는 말입니다. 아들을 죽여서까지 우리를 죄에서 분리시키신 주님은 불의를 절대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죄에 대하여 그만큼 엄격하시다는 말입니다. 죄는 인간을 망치기 때문에 절대적인 사랑 안에서 인간이 망하지 않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 깊이 체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 앞에 뜨겁게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자이고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사건을 자기 몸에 가진 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구속의 은총을 잊어버리고 죄짓고 불의를 용납한다면 그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든지, 아니면 구원을 받고도 구원받은 사건이 귀한 줄 모르고 저버린 사람입니다.
우리가 정말 구원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합니다.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사랑에 거하여 죄와 분리되는 것이 영혼의 때를 위해 세월을 방탕하게 살지 않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55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