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때를 위하여 세월을 아끼라(11)] 주님 심정을 알고 감사하는 성도

등록날짜 [ 2018-02-12 13:52:43 ]

천지만물 주신 것에도 감사하지만
예수 십자가 피의 은혜로
영원한 죄와 저주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은혜가 가장 큰 감사
그 은혜와 사랑에 뜨겁게 감동해 하나님의 어떤 요구에도 순종해야
 
◆ 은혜 베푼 자의 심정을 알고 하는 감사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영원히 감사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만물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더 큰 감사는 그 아들 예수를 보내서 우리를 질병에서, 저주에서, 죽음에서, 멸망에서, 지옥에서 건지신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를 영원한 지옥에서 구원하셨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만물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보다 우리가 영원한 지옥에서 구원받은 은혜에 대해 감사할 때 그것을 최상의 감사로 받으십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용돈을 주거나 자녀가 원하는 것을 사 주면 고맙다고 인사를 합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간순간 보이는 것에만 감사해도 부모는 그 모습을 보며 기뻐합니다. 그러나 부모가 정말로 기쁠 때는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한 부모의 심정을 알고 감사를 표현할 때입니다.


오늘날에는 아이를 낳다가 죽는 경우가 별로 없지만 옛날에는 죽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만삭이 되어 아이를 낳으러 방에 들어갈 때는 미리 죽음을 각오합니다. 그렇게 힘들게 낳은 자식을 키우면서 부모는 못 먹고 못 입어도 자식만큼은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키우기 위해 몸부림을 칩니다.


그런데 만약 딸이 시집가면서 혼수 해 준 것에 대해서만 감사하다고 한다면 부모가 얼마나 서운하겠습니까. 부모의 인생을 투자한 그 사랑을 몰라줄 때 답답하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키우고 입히고 가르치고 사랑한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감사할 때 해와 달과 공기와 먹을 것을 주셨다고 천지 만물을 주신 것에 대해서만 감사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서운하시겠습니까.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기까지 우리를 영원한 지옥 형벌에서 구원하신 그 은혜에 감사하며, 아들로 베푸신 그 사랑을 가지고 감사해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십니다. 바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감동을 받으십니다.

내가 받은 구원의 믿음을 계속 키워 나가기 위해서는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 십자가의 피 공로를 한시도 잊지 않고 예수의 사랑에 젖은 삶을 살아야 기도하며 감사하며 충성하며 전도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뜨겁게 움켜쥐고 구원받은 은혜의 최고 절정에서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 드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절정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어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되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하신 그 은혜에 감사하며 사는 믿음의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 그리스도를 경외하라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21).

우리가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것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창조자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구세주로서 영원히 영광을 받으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머리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서 구세주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는 선지자의 사명과 제사장의 사명과 왕의 사명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선지자로서 우리에게 율법을 제시하여 우리가 죄인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달았을 때 그는 제사장으로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또 그분은 사랑의 왕이요, 구원의 왕으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권세나 힘이 아닌 오직 구속의 은총으로 우리를 다스리는 왕이십니다.

가정에서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해도 마지못해서 하는 사람과, 부모의 은혜와 사랑을 알고 진심으로 순종하는 사람과는 그 수준이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믿어도 지옥에 갈까 봐 두려워서 믿는 사람과, 주님이 베푸신 은혜와 사랑에 뜨겁게 감동하여 경외함으로 믿는 사람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지옥에 갈까 봐 두려워서 믿는 사람들은 신앙생활이 피동적입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 지옥을 면해 보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참석하는데 은혜받지를 못합니다. 더 이상 신앙생활의 발전도 없고 기쁨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베푸신 은혜와 사랑에 뜨겁게 감동하여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요구를 하시든지 거절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큰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에 그저 그 말씀에 순종할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선지자의 사명과 제사장의 사명과 왕의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확실히 체험한 자는 그 안에 넘치는 기쁨으로 예수를 경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사랑의 주인이십니다. 사랑의 주인 앞에 순종하며 경외하는 자세는 세상에서 권력을 가진 임금 앞에서 하는 순종과 수준이 다릅니다. 세상 임금 앞에서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굴복하지만 주님 앞에는 우리를 위해 피 흘려 죽으시고 지옥에서 건져 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스스로 굴복하고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감사가 충만합니다. 기도할 때도 감사부터 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기도하려고 자리에 앉자마자 하나님께 따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 도대체 이럴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지키기 위해 보초를 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를 지키시지만 우리가 대단한 존재여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하나님 아들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지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 우리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 안에 예수의 생명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실 만한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하며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주심을 인하여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56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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