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8-03-23 13:15:32 ]
육신은 잠깐 살다 사라지나
영혼은 영원히 살기에
육신의 때 물질적 불황보다
영혼의 영적 불황 먼저 타개해야
◆ 우리의 시간을 요구하는 세상
지난날을 뒤돌아보면 영적으로 더 열심히 살지 못한 날들이 얼마나 후회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후회가 클수록 더욱 세월을 아껴서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더 이상 남은 시간을 방탕하며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불의한 생활로 소모할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는 타락한 세상을 좇아 인생을 허비해서는 안 되며 영혼의 때를 위하여 내 육신의 때를 알뜰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아무리 아끼고 또 아껴도 사라지고 없어질 인생이라면 위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아래로는 자기 영혼의 때를 위해서 값지게 살아야 합니다.
텔레비전을 하루 방송이 다 끝날 때까지 시청하면 그 다음날은 몹시 피곤해서 일어나기가 힘듭니다. 그만큼 육체를 낭비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사용한 만큼 피곤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보람 있는 일로 피곤하고, 가치 있는 일로 피곤하고,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한 일로 피곤해야지, 영혼에 전혀 유익이 없는 일로 피곤하다면 육체를 낭비한 것입니다.
무리한 노동을 하지 않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데도 계속해서 피곤하다면 육체의 어딘가가 병들었다는 증거입니다. 영적인 일을 위해 부지런히 노동하는 사람은 질병도 잘 찾아오지 않습니다. 주님이 늘 함께하시기 때문에 질병이 육체를 장악할 기회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한 목적으로 돈을 모읍니다. 그러나 그렇게 먹고살다가도 결국엔 죽는 것이 인생의 법칙입니다. 회사에서 주는 한 달의 월급은 한 달 동안 자기 인생을 소모한 값을 받는 것입니다. 월급을 많이 주는 좋은 직장에 다닌다고 자랑하지만, 액수에 관계없이 한 달의 목숨을 월급과 바꾼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내 목숨을 돈과 바꾸었다고 할 때 어떻게 해야 그 돈을 가장 값지게 쓸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눅 12:17~19)
소출이 풍성한 농부가 들판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생각했으나 예수께서는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 12:20)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21)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가 가진 재물은 자기 영혼의 때를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자기 영혼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이 땅에 산 날들을 가장 값지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 잘살아 보겠다고 허리띠를 졸라매지만, 세상에서 제일 미련한 사람이 못 먹고 못 입으면서 돈만 모으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굉장히 지혜로운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돈이 많다고 부자가 아닙니다. 육신이 건강하고 영혼도 건강하여 부유를 누려야 진정한 부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영혼의 부유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이렇게 삶에 대한 지혜가 부족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물질의 불황을 타개하기 전에 먼저 영적 불황을 타개해야 합니다. 세상의 것을 얻으려 하기 전에 먼저 하늘의 것을 얻어야 합니다. 그런데 돈을 벌기 위해 돈 앞에는 악착같이 의리를 지키면서 주일도 못 지키고 십일조도 못 하고 기도도 못 하고 충성도 못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돈에 인생을 맡겨서는 안 됩니다.
이 말은 돈을 벌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그 돈이 우리 영혼의 때에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면 그 돈은 우리 영혼에 무용지물이라는 말입니다. 돈을 많이 벌었다면 그 돈을 가지고 주를 위해 써야 합니다. 그래야 그 물질이 내 영혼의 부유를 만듭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칠십 년, 팔십 년 사는 육신의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이라는 세월 속에 육신의 때인 칠십 년, 팔십 년은 마치 하루살이의 삶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루살이와 같이 죽어 없어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육신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영원히 살기 때문에 영원히 사는 날을 위하여 내게 주신 육신의 날을 신령한 기회로 삼아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평생을 사는 동안 우리가 가진 세월을 요구하는 곳이 얼마나 많습니까? 회사는 노동할 시간을 내놓으라고 요구합니다. 자식들은 성장할 때에 부모의 인생을 투자하라고 요구합니다. 또 자기 스스로 육신의 향락과 쾌락을 좇기 위해 시간을 내놓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세상의 물질문명과 육신의 욕구 충족을 위하여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주의하여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지혜 있는 자같이 값지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 영혼의 때를 위하여 값지게 준비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시간을 신령한 영적 부유를 만드는 시간으로 바꿔 나가야 합니다.
내가 이 땅에서 육신을 가지고 사는 세월 속의 시간은 내 영혼의 때를 신령하게 준비하는 기회요, 자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어디서든지 영혼의 때를 위해 육신을 알뜰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럴 때 영혼의 때에 가장 기쁜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수고하고 애쓴 모든 것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하늘나라의 신령한 상급이 되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56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