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때를 위하여 세월을 아끼라(16)] 영혼의 때 좋은 결실 거두는 지혜로운 사람

등록날짜 [ 2018-03-30 14:11:49 ]

매우 짧은 육신의 때에
신령한 씨앗 부지런히 뿌려야
신령한 열매 풍성하게 거둬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단련하는 운동선수처럼
영적생활에도 부단한 훈련 필요해


◆세월에 뿌린 생명의 씨
인간의 육신은 칠십 년, 팔십 년의 짧은 생애에 불과하지만 영혼의 때를 위해 산다고 할 때 그 시간은 농부에게 소득을 안겨 주는 농토와도 같습니다. 육신의 때라는 농토를 가꾸지 않아 잡초만 무성하다면 쓸모없는 황무지에 불과할 것이고, 신령한 씨앗을 뿌리고 잘 가꾸면 영혼의 때에 신령한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때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영원한 영혼의 때가 결정됩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 세월에 뿌린 생명의 씨를 풍성하게 가꾸어야 합니다.

가시덤불 위에 씨를 뿌렸다면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비록 눈물로 씨를 뿌렸어도 옥토에 뿌리지 않은 씨는 풍성한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말씀이라는 생명의 씨를 뿌려도 옥토와 같은 심령에 뿌리지 않으면 영혼의 때에 좋은 결실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옥토 같은 심령을 만들 수 있을까요? 먼저 회개로 심령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릴 때도 일찍 와서 기도로 준비하며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사모하는 분량이 옥토가 되고자 하는 희망이요, 말씀의 씨앗이 뿌리를 내려 아름답고 풍요로운 가을 작품이 되기를 바라는 소망입니다.

길가 밭 같은 심령은 하나님 말씀 받아들이기를 거부합니다. 길가 밭 같은 심령은 말씀의 신령한 씨가 뿌려져도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죽은 밭입니다. 어떤 때는 교만하고, 어떤 때는 인색하고, 어떤 때는 융통성이 없고, 어떤 때는 속이 좁아 쉽게 화를 내는 것은 길가 밭 같은 심령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과 지혜 없는 사람은 믿음의 분량에 현저한 차이가 있습니다. 믿음의 분량만큼 신앙생활 하는 분량도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신앙생활 하는 분량은 아무리 클지라도 허영이 아니기에 결코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일은 이 땅에서 마감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영원한 하늘나라까지 연결됩니다. 비록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면 이 세상 일보다 큽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사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으로 신앙생활 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신앙생활 하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지혜롭게 살라’,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지금은 젊을지라도 노년의 때는 어느새 다가옵니다. 세상 어느 누가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나는 지혜 있게, 규모 있게 살았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영혼의 때를 바라보며 남은 시간만큼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살아야 합니다. 그 속에 영원한 생명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경건의 연습
홍수환이라는 권투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파나마의 카라스키야 선수와 권투 시합을 하면서 네 번이나 다운을 당했습니다. 제가 코치였다면 아마도 경기 도중에 수건을 던졌을 것입니다. 아무리 봐도 이미 진 경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가 다시 일어나서 있는 힘을 다해 강한 펀치를 날렸고, 그 펀치에 카라스키야 선수가 완전히 나가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홍수환 선수가 링 안에서 네 번이나 다운을 당했을 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얼마나 좌절했겠습니까? 상대가 강한 펀치로 사정없이 내려칠 때는 눈이 핑 돌고 앞이 안 보일 정도로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가 다시 일어난 것은 어떤 의식을 가지고 일어난 것이 아니라 끝없이 반복한 습관 때문에 기계적으로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기계적이고 습관적으로 일어날 만큼 훈련하지 않았다면 홍수환 선수는 그 경기에서 승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몸에 습관이 밸 정도로 혹독한 훈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7~8).

성경이 우리에게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마지막 최후에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원수와 싸워서 이겨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운동도 몸에 밴 습관으로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영적생활은 얼마나 더 많은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겠습니까? 경건하지 못한 신앙생활은 곧 세월을 낭비하는 것이며 결국 영적으로 패배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홍수환 선수는 카라스키야 선수와 시합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기회를 포착했을 때는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은혜받을 기회, 전도할 기회, 충성할 기회가 생기면 놓치지 말고 믿음으로 정복해야 합니다. 믿음을 가질 기회를 놓치면 침륜에 빠지고 침륜에 빠지면 타락하기 쉽습니다.

저도 경건의 연습을 하기 위해 무척 노력합니다. 어느 날은 새벽 5시까지 기도하겠다고 다짐하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확실한 의식 속에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내’가 사라졌습니다. 어디 갔나 했더니 누워서 자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잠에서 깨어난 후에야 알았습니다. 기도하기로 결심했지만 잠든 그 시간은 잃어버린 시간입니다. 기도하려고 마음먹었다면 도중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실행해야 영혼의 때를 위해 값지게 투자한 시간입니다.

경건의 연습은 시작을 어떻게 하느냐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기도하기로 결심했다면 부르짖어 기도하여 그 시간을 하늘의 신령한 것으로 값지게 투자해야 합니다. 이 기쁨을 아는 사람은 매일 기도하는 일에 불평불만이 없습니다. 텔레비전 보는 재미보다 기도하는 재미가 더 크다는 것을 알기에 매일 성전으로 기도하러 나옵니다. 이 사람은 날마다 경건의 연습을 하는 사람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569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