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4-03-07 10:49:39 ]
남의 죄를 고의로 대신 짊어지고
죽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섬김
하나님이 직분자를 세운 목적도
주님처럼 십자가 지고 죽기까지
교회와 성도를 섬기게 하려는 것
십자가는 어느 정도 죄를 지었다고 해서 죽을 수 있는 형틀이 아닙니다. 찢어 죽여도 시원찮고, 껍질을 벗겨 죽여도 시원찮고, 목을 쳐서 죽여도 시원찮고, 불로 태워 죽여도 시원치 않을 정도로 죄인 중의 죄인 괴수를 고통 또 고통 속에서 죽이려고 고안한 것이 바로 십자가형입니다. 손과 발에 대못을 박아 물과 피를 다 쏟을 만큼 육체에 온갖 아픔과 고통을 가하여 오래오래 그 고통을 겪게 하다가 죽이는, 죄인으로서는 가장 큰 고난을 가하는 것이 십자가형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짊어질 때 그냥 짊어지셨습니까?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이렇게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매질과 모진 고초를 당하면서 십자가를 짊어지셨습니다. 그런데도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이 입을 열지 않고 변명하지 않고 인류의 죄를 끝까지 뒤집어쓴 채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6~7).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어떤 교회든지 누군가의 잘못으로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심중으로는 알지만 잘못한 사람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그 일은 제가 한 일입니다”라며 십자가를 진다면, 잘못한 장본인도 양심이 있으니 어느 때엔가는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교회는 더는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분명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내가 남의 죄로 말미암아 누명을 썼다 해도 주님은 이미 그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그 죄를 사해 주셨다고 믿는다면 내가 십자가를 뒤집어쓰는 일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야 합니다. 직분자가 누명을 뒤집어쓰더라도 그 죄를 지고 담대히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십자가의 진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누명을 벗으려 하지 않습니다.
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죄 사함받은 자들입니다. 달리 말하면 주님께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죽인 자가 바로 ‘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고백이 있는 자라면 이웃을 위해 담대히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를 진 직분자는 죄인 취급을 당하며 말로 다하지 못할 불명예와 천대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늘에 상이 있는 의로 인한 핍박이요, 주님 나라로 가는 좁은 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누군가가 잘못한 일이 있다면 직분자가 대신 십자가를 짊어지고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남의 죄를 짊어지고 내가 죽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섬김입니다. 하나님께서 직분자를 세운 목적은 교회와 성도를 섬기되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주님처럼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진 직분자는 당시에는 모진 핍박과 중상모략, 멸시천대와 불명예를 당하게 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아시니 때가 되면 불명예를 다 벗겨 주십니다. 나아가 마지막 날에 부활의 영광을 맞이할 것입니다. 육의 눈으로 볼 때는 불행을 자초하여 멸시 천대 죽음으로 마감되는 것 같지만, 신령한 영의 눈으로 볼 때는 신앙생활의 최고 상사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영원히 빛나는 영광을 누리는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8:34).
위 글은 교회신문 <83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