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4-05-08 11:55:05 ]
새가족의 영혼을 관리할 때
아직은 연약할 그의 믿음에
맞춰 가며 서서히 이끌어야
동질감 느끼게 하며 섬길 것
영혼 관리에서 섬김을 받는 이가 직분자에게 동질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말 한마디에 영혼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그래서 말은 정말로 잘해야 합니다. 말을 잘못해서 영혼이 상처받고 실족하면 되겠습니까? 그래서 직분자는 어떤 상황에도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서 잘 대처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누구라도 맞춤형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신앙 인격을 잘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 전도받아 교회에 몇 번밖에 안 나온 사람이 “이번 주일에 사정이 있어서 예배드리러 가지 못한다”고 말할 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 사람의 사정을 듣고 정말 오지 못할 형편이라면 빨리 마음을 접어야 합니다. 권면하는 것을 차마 포기하지 못해 전도받은 이에게 끝까지 나오라고 계속 붙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어차피 교회에 오지 못할 것이라면 그다음 주에는 꼭 예배드리러 오도록 당부하며 다시 교회에 초청할 상황을 지혜롭게 만들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 그런 일이 생겼어요? 제가 기도하지 못하고 더 관심 가져 주지 못해서 죄송해요. 기도할게요. 그럼 다음 주일에는 꼭 만나요.”
그리고 주일이 지난 후에 꼭 전화해서 교회 오지 못하던 그 일이 잘 해결되었느냐고 물어봐야 합니다. 그 사람의 일을 내 일처럼 살펴 주면 이로 말미암아 친분이 더 두터워지고, 교회에 오도록 다시 초청했을 때도 차마 거절하지 못해 다음 주일에는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상황이나 믿음의 분량은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 믿음에 기준을 두고는 “아니, 그까짓 일 때문에 교회에 못 나와요?”라며 야단치고 나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새가족에게는 ‘그까짓 일’이 아닌데 그 같은 책망을 들었을 때 얼마나 무안하겠습니까? 얼마나 무시당하는 것 같겠습니까? 상대방을 나와 같은 믿음의 수준으로 여기고 내 기준에 맞추려 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나를 그 사람 상황에 잘 맞춰 가면서 서서히 그 사람을 이끌어야 합니다. 이것이 내가 그 사람에게 맞춰 주는 것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그 사람이 내게 맞춰지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마음 문 열어야 예수 줄 수 있어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고전9:19~23).
고린도전서 말씀처럼 바울은 유대인을 얻으려고 유대인처럼 되었고,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으려고 율법 아래 있는 자처럼 되었습니다. 또 율법 없는 자들을 얻으려고 율법 없는 자처럼 되었으며, 약한 자들을 얻으려고 약한 자처럼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려고 그들이 바울에게 동질감을 느끼도록 말하고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일단 전도받을 사람의 마음 문을 열고 그의 마음을 얻어야 내 속에 있는 예수를 줄 수 있습니다. 어린이를 관리할 때는 어린이가 되어야 하고, 청년을 관리할 때는 청년이 되어야 합니다. 그에게 영혼 구원이라는 하늘의 신령한 것을 주려고 그와 하나가 되는 동질감을 갖는 것은 영혼 관리에서 절대적 요소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84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