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4-06-12 14:22:56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낳은
영적 아비 심정을 가진 자라면
담당한 영혼을 포기할 수 없어
죽기까지 맡은 영혼 품어 주고
영적 성장을 책임지고 섬길 것
마태복음은 닭과 관련한 예수님의 말씀을 두 군데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울부짖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멸망할 인류를 향해 안타까워하고 슬퍼하시는 애타는 심정을 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마23:37~39).
예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속의 은총으로 품으려 했지만 그들이 원치 않았다는 말입니다. 날개 아래 새끼 병아리를 품는 어미 닭의 애절한 심정을 모르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또 다른 장면은 제자들이 주를 위해 죽을지언정 결코 부인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으나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오늘밤 수탉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말씀하신 구절입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찌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마26:33~35).
끝까지 책임지는 직분자의 사명
성경에서 말씀하신 닭의 예화는 직분자로서 가져야 할 사명을 생각하게 합니다. 암탉 예화는 죽기까지 담당한 영혼을 품고 키워서 예수 생명이 넘치도록 해야 할 사명을 떠오르게 합니다. 또 수탉 예화는 예수를 알지 못해서 예수를 부인한 제자가 회개하고 통곡하며 주님께 돌아오도록 한 것처럼 회개케 하는 사명을 일깨워 줍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4:15)라고 말한 것은 “나는 너희를 복음으로 낳은 영적 천륜의 아비이기 때문에 결코 너희를 포기할 수 없다”라는 말입니다.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낳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바울과 같이 자기가 담당한 영혼을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직분자의 사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낳아서 그들을 책임질 수 있는 아비 정신이 있을 때 드디어 사명이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냥 남의 자식을 키우는 것처럼, 잘 성장하면 좋고 잘못 성장해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영혼 구원을 위한 직분을 감당하는 것을 사명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혼을 전도하고 그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살리려고 직분자가 되었으니 사명자로서 자신의 지위를 구령의 열정으로 명확히 지켜야 합니다. 이는 영혼을 맡은 자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아비의 정신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믿어지지 않는 사람과는 어떠한 거래도 하지 않습니다. 상대를 믿을 수 있어야 거래를 합니다. 영혼 관리 직분을 맡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믿어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공로로 값 주고 사신 영혼을 맡긴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우리를 믿으셨으면 독생자의 피를 지불하고 산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맡기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죄 아래 살다가 멸망을 향해 가는 수많은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의 십자가 피의 복음으로 낳아서 키우라는 사명을 직분자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직분자는 계속 전도해서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낳은 영혼을 키워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믿음이 되고 죄에서 사망에서 영원한 지옥 고통에서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85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