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12-15 19:03:55 ]
형식적인 내 신앙에 경종 울려
김요환 성도(글로리아찬양대)
우리 집안은 할아버지 대부터 예수를 믿었다. 할아버지는 마을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장로셨고, 할머니는 권사님, 어머니는 믿음이 강한 분이셨다. 겉보기에는 착실한 믿음의 가정이었다. 하지만 차마 말 못할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술만 드시면 목사님을 욕하고 교회에 가는 우리를 매질하고 핍박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내게 꼭 교회에 다니라고 신신당부하셨지만, 교회에만 갔다 하면 아버지가 매를 드는 통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나마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누나를 따라 교회에 다녔다. 어머니는 어려운 살림에 용돈은 주지 못해도 하나님께 예물은 드려야 한다며 내 손에 10원을 꼭 쥐어 주셨다. 그때는 철이 없어 예물 드릴 10원짜리를 몰래 숨겨 뒀다가 들켜 혼도 많이 났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그런데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그때부터 아버지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신 것이다. 그렇게도 자식들을 핍박하시던 분이 교회에 나가시다니…. 나중에 안 사실인데 할아버지께서 임종 직전에 아버지에게 “꼭 교회에 나가라”고 유언하셨다. 주님께서는 할아버지가 평생 드린 기도에 응답하신 것이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도 내 학창시절은 형식적인 신앙 그 자체였다. 모태신앙이고, 장로님의 손자라는 자부심만 가득할 뿐, 그저 친구들과 노는 재미로 교회에 다녔다.
서울에 취직한 후 도시 생활을 시작하면서 주님과 더 멀어졌다.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다 보니 방탕하게 생활하며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냈다. 친구가 권유한 교회에 다니며 믿음이 생겼지만 잠시뿐, 더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내 손을 놓지 않으셨다. 몇 해 후 사업을 시작했고, 고객 중 한 분이 연세중앙교회에 다니라고 권면했다. 그러나 “언젠가 교회에 갈게요”라고 말만 했지,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교회 가길 미뤘다. 그러던 중, 사업이 어려워지고 신뢰하던 사람마저도 나를 힘들게 했다. 거래처 사장님께서는 의지할 데가 없게 된 나를 위로해 주고 기도해 주셨다.
결국 교회에 나가기로 마음먹고 윤석전 목사님의 첫 설교 말씀을 들었다. 맨 처음 교회에 왔을 때는 설교대로 솔선수범하신다는 담임목사님 목회 방식에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연세중앙교회에서 신앙생활 할수록 강단에서 선포하신 대로 실천하시는 목사님의 모습에 크게 감동했다.
또 그 설교 말씀을 통해 그동안 무난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하던 나 자신이 죄 아래 멸망할 수밖에 없는 영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이 메말랐느냐?”며 감성이 없다는 소리까지 듣던 나인데…. 주님은 나를 회개하게 하셨고 믿음과 기쁨으로 충만케 하셨다.
그 후 두 번이나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일이 생겼지만, 이러한 불행이 신앙생활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마귀 사단의 시험이라고 깨닫는 분별력을 주셨다. 또 내 영혼이 목말라 교회에 나오는 일에 마음을 쏟게 하셨다. 찬양할 자격을 주시고 보잘것없는 입술로 예수 피를 전하게 하신 주님 은혜에 감사하며 이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린다.
찬양대원으로 영광 돌리는 큰 기쁨
오금정 집사(글로리아찬양대)
한 해를 마무리하며 돌아보니, 올 한 해 주님이 주신 축복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찬양대에 지원한 일이 아닌가 싶다. 아이가 어느덧 자라 혼자서도 소속한 교육부서에 잘 찾아가고 교회 생활을 잘하니 내게도 충성할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같은 여전도회원에게 도움을 받아 찬양대에 지원했다.
은혜와 축복이 있는 자리에는 영적 싸움이 늘 존재하듯, 신입대원 때는 찬양대에 서는 일이 만만하지 않았다. 교회에서 집까지 거리가 먼데 주일 아침에 일찍 연습하러 나오는 일부터, 바쁜 일과로 피곤하다 보니 수요일과 주일 저녁 연습을 감당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목이 약해서 몸이 피곤하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찬양대 지원을 잘한 건지 마음이 답답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찬양대 파트장님과 임원들이 기도해 주시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며 격려해 주어 마음을 새롭게 다잡곤 했다. 허리가 아파서 병원 진료를 받아야 했을 때 찬양대 임원들의 기도가 큰 힘이 되었다. 친정어머니가 큰 수술을 받으셨을 때도 찬양대 직분자들이 마음을 담아 위로하고 섬겨 주시며 찬양대원으로서 소속감을 잃지 않게 해 주셨다. 비록 부족한 자이지만 찬양할 입이 있고 건강하니 감사하며 찬양하는 모든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고 찬양대에 서려고 노력하니 잘 나오지 않던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고, 잘 벌어지지 않던 입도 더 크게 벌어져 풍성한 목소리로 찬양할 수 있었다. 찬양 가사도 잘 외워졌다. 넘어지기 쉬운 내 연약함을 아시고 늘 격려를 아끼지 않는 찬양대 파트장님과 임원분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찬양대에 계속 설 수 없었으리라. 직분자들을 붙여 주셔서 섬기게 하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생각이 든다.
한 주간 세상에서 휘둘리며 짓눌린 내 영혼이 찬양대에 가면 영적인 힘을 공급받는다. 또 찬양대석에서 담임목사님을 가까이 뵈며 설교 말씀을 듣는 특권은 예배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하고 내 신앙생활을 성장하게 해 주었다. 무엇보다 찬양을 올릴 때 가사 하나하나가 지닌 영적인 의미를 깨치며 큰 은혜를 경험했다.
찬양대에서 충성하다 보니 그간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응답되지 않던 ‘남편의 열심 있는 믿음 생활’도 열매를 보았다. 남편은 지난 몇 개월간 남전도회 지역 전도모임에 꾸준히 참석했다. 그 결과 10월에는 고등학생 4명을 전도하는 열매를 거뒀다.
이번에 남전도회 전도실에 소속돼 토요일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전도에 힘쓰려 한다. 또 한 달 전에는 주님께서 부부가 함께 찬양하는 복을 허락하셔서 남편도 찬양대에 지원했다. 이 모든 것이 찬양을 들으시고 막힌 것들이 열리게 하고 은혜를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나처럼 연약한 자에게 찬양을 통한 영적인 생명의 공급은 얼마나 절대적인지 모른다. “황소를 드림보다 진정한 찬양을~”이라는 찬양 가사처럼 생명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주님께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은 부족한 입술로 찬양하는 일이다. 찬양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한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나를 사용하시는 주님께 감사하며 찬양대원으로 써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린다.
위 글은 교회신문 <41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