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3-09-03 21:10:16 ]
<사진설명> 헬몬찬양대가 주일 4부예배에서 찬양하고 있다.
이관세(헬몬찬양대·베이스)
학창 시절, 영어 공부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미래를 향한 원대한 꿈을 안고 유학 준비에 마음을 쏟았다. 그런데 공부하던 중 뒷목이 갑자기 뻐근하기 시작하더니 감내하기 힘들 정도로 두통이 심해져 유학도 포기한 채 직장생활과 무역을 하면서 전국의 유명하다는 병원은 다 다녀 보았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강구하였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어 전전긍긍하던 중 25년 전 천안의 한 한방병원에서 경추골절이라는 진단을 받아 교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병이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어서인지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고 고통만 가중되어 절망 속에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핍박자이던 내가 예수를 만나다니
지난 2017년 1월 “우리 교회에 한 번만 와 달라”라는 지인의 간곡한 부탁을 받아 연세중앙교회에 왔다. 딱 한 번만 참석한다는 조건으로 약속했으나 일단 교회에 발을 들였다가 그만두자니 뭔가 마음에 걸리는 바가 있었고, “하나님만 믿으면 병 나을 수 있다”라는 말에 귀가 솔깃하기도 했다. 40년 가까운 세월을 고통받으며 살아온 터라 절박한 상황에서 거절한다는 것은 사치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들어 우여곡절 끝에 계속 교회에 다녀 보기로 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세상 학문을 가까이 익히고 진화론만 믿어온 터라 노아의 방주, 홍해의 갈라짐, 오병이어 사건 그리고 예수의 부활 등을 기록한 성경은 이해하기는커녕 황당무계한 책으로만 여겨졌다. 교회 다니는 것을 중도에 포기하려고 수없이 고민도 했지만, 여기에서 끝내 버리면 영원히 병을 고칠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 생기며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 보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주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시어 복된 생각을 주신 것이었다.
평소 주일 2부예배만 참석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고 차츰 영적 세계도 깨닫게 되었다. 하루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믿음이 어느새 내 안에 자리 잡은 것도 느껴졌다. 성경 말씀을 읽어 갈수록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에 감동받다 보니, 지난날 나 자신의 무위도식하던 삶을 반성하고 영원한 본향인 천국에서 받을 기업도 바라보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사명 감당하고 성령 충만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지길 간구했다.
뒤늦게 시작한 신앙생활이지만 제대로 예수를 믿어 보자고 다짐하면서 성경 공부를 고시 공부하듯 하다 보니 어느덧 성경 통독을 20여 회 넘게 했고, 요즘은 성경 필사에 빠져 살고 있다. 성경을 한 글자, 한 글자씩 쓰다 보면 그동안 다독하면서 보이지 않고 놓친 부분까지 깊이 있게 느껴지고 성경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고 나 자신이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kairos)의 시공간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아직도 두통에 시달리고 있으나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공로로 받은 구속의 은혜를 생각하면 이 또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예수 믿는 사람을 무시하고 핍박해 온 나인데, 게다가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나인데…. 이처럼 아프지 않았다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겠는가. 나로서는 예수를 구주로 만나는 일이 상상하지 못할 일이지만, 하나님은 영생의 길로 미리 계획하고 인도하셨던 것이다.
고난과 고통은 하나님을 만날 기회이자 축복이었다. 질병이 하나님의 형벌과 저주로 간주되던 시절에 사도 바울은 질병을 하나님의 절대적 은혜로 받아들였다(고후12:9). 시편 기자 또한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라고 고백한다. 이 모든 복을 주신 은혜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찬양하고 묵상하며 큰 은혜 경험
하나님께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해 2018년 여름부터 헬몬찬양대에 자원해 충성하고 있다. 가장 은혜받은 곡은 ‘여리고성과 여호수아’(우효원 곡)인데, 믿음의 가사를 찬양으로 올려 드리고 여호수아서도 묵상하면서 은혜를 많이 받았다.
여호수아서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정복해 가는 역동적인 장면들이 담겨 있어 신앙인들이 자주 묵상하곤 한다. 여호수아를 읽는 동안 가슴이 뜨거워지고 오늘날을 향한 거룩한 비전을 세우기도 한다. 바로 여리고성이 칼과 창으로 무너지지 않고,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수6:20) 말씀에 순종해 무너졌기 때문이다.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터뜨리면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그려 본다.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침묵하면서 성을 돌고, 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 돌고 제사장이 나팔을 불 때 온 백성이 크게 외치라는 명령에 나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끝까지 순종했을까? 아니면 중도에 포기하고 그만두었을까?’ 나의 신앙을 점검해 보면서 이스라엘의 순종을 가슴에 깊이 새긴다.
또 갈렙이라는 사람을 주목했다. 비록 85세 할아버지였지만, 갈렙이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붙들고 결국 가나안의 가장 위험한 지역을 차지한 것을 보며(수14:12~14) 거룩한 신앙 앞에서 큰 감동을 받기도 했다. 갈렙이 얻어 낸 땅은 ‘헤브론’인데 아브라함이 거주한 곳이며(창35:27) 더 나아가 다윗이 처음으로 나라를 세운 곳(삼하5:3)이므로, 이 같은 신앙의 유산이 있는 곳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갈렙의 신앙 앞에 경외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처럼 성경 말씀을 읽고 찬양하면서 내가 바로 여호수아 같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싶고, 갈렙 같은 신앙인이 되고 싶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찬양대가 믿음의 가사로 찬양할 때도 그 믿음의 가사처럼 살기를 사모하고 있다.
은혜의 주께 어찌 찬양 안 하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찬양하려고 지음받은 존재이며(사43:21) 구속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찬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찬양은 우리의 간증이요 영적 예배이다.
거룩하신 내 주님을 찬양하기에 합당하도록 기도로 욕심을 부수고 음란함을 정결케 하고 마음속 모든 악한 것을 예수의 십자가 피의 공로로 깨끗이 씻어 내는 것이 찬양하는 자의 기본일 것이다. 그래서 입술로 찬양하기 전에 기도하고 회개해 영으로 거룩하게 찬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님을 찬양할 때 항상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임하게 된다. 기도와 말씀으로 성령 충만하고 하나님을 깊이 체험할 때, 또 내 안의 더러운 것들을 샅샅이 발견하고 씻어 낼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고 그때부터 고백의 찬양을 할 수 있다. 찬양은 내가 영적 세계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만큼 더 진실하게 터져 나오는 것이리라.
예전에는 당연시하던 것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름다운 노을과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하나님의 작품임에 감탄하자 찬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찌어다 할렐루야”(시150:6). 여건이 된다면 뜻있는 성도들과 영어성경반과 영어찬양반을 결성해 마음껏 주를 찬양하고 싶다.
황량한 인생의 광야에서 방황하던 나를 구원하기로 작정하시고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처럼 메마른 삶에 숨을 불어넣으시어 피가 돌고 생기를 회복시켜 하나님의 형상다운 삶을 살도록 이끄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린다. 할렐루야!
위 글은 교회신문 <81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