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4-09-21 08:55:43 ]
6년 전 홀로 한국에 와서 정착을 준비하던 중 신앙생활 할 복된 교회를 찾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한국에 먼저 와 있던 고향 언니가 연세중앙교회에서 개최한 설날축복대성회에 초청해 주었고, 그해 설날성회와 연세중앙교회를 만나면서 내 신앙생활도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후 구로구 오류동에서 지내며 행복하게 신앙생활 하고 연세가족으로서 영적생활도 이어 갈 줄 알았으나 1년이 채 지나기 전에 또 다른 변곡점을 맞았다. 살던 곳으로 다시 출국했다가 지난 몇 년 사이 남편의 소천과 전 세계적으로 고통을 안겨 준 코로나19 사태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2022년 10월에야 다시 한국으로 올 수 있었고, 그리워하던 연세중앙교회로 돌아오니 답답하던 마음이 시원해졌다. 마치 꼭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린 듯했다. 그때 깨달은 것이 있다.
‘아! 나는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이구나!’
하나님을 위해 충성할 곳을 찾던 중 헬몬찬양대에서 찬양을 시작했다. 처음 찬양할 때는 너무 떨려서 무슨 찬양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비록 찬양대석에 서는 게 떨렸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찬양하는 도구로 나를 써 주시는 것에 한없이 감사했다. 지금은 찬양대 사역과 충성 일정에 적응해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마음껏 올려 드리고 있다.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찬양하니 지난날 경험한 찬양의 은혜가 기억나기도 한다. 몇 년 전 딸이 코로나19에 걸려 힘들어하던 중 갑자기 호흡 곤란이 찾아왔다. 그때가 새벽 2시 즈음이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자고 있었고, 어느 순간 눈을 떠 보니 딸이 숨 쉬기를 힘들어하며 기도하고 있었다. 딸아이에게 믿음이 있어 호흡하기 어려워하면서도 그 힘듦을 고쳐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딸이 힘들어하는 것을 진정시키려고 함께 찬양하자고 했다. 마치 바울과 실라가 찬양할 때 빌립보 감옥의 문이 열린 것처럼 딸의 숨을 막고 있는 마귀역사가 떠나가고 고른 숨이 돌아오길 간절히 기도하면서 진실하게 찬양했다. 깊어가는 밤에 2시간 가까이 딸과 함께 찬양과 기도를 반복하니 어느새 딸의 숨이 가벼워졌다. 고른 숨으로 새근새근 자는 딸을 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렸다.
또 하루는 이가 무척 아파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살아 계신 주’ 찬양을 계속 올려 드렸다. 통증 탓에 이 아픈 것에만 신경이 쓰였는데, 어느 순간 ‘그렇지! 하나님이 살아 계시지! 왜 평소에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생각하지 못하고 막연히 찬양했던가’라는 복된 깨달음 앞에 가슴 벅차게 감사했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찬양하면서 치통도 사라져 잠을 이룰 수 있었다. 이처럼 찬양하고 믿음의 고백을 올려 드리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할렐루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찬양은 ‘그가 찔림은’이라는 곡이다. 2024 부활절 감사찬양을 앞두고 연합찬양대원들과 이 곡을 연습했다.
“그가 찔림을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라” 찬양을 올려 드릴 때 나를 위해 살 찢고 피 흘려 죽어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공로가 마음속에 절절히 와닿았다. ‘주님, 나를 위해 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위해 흘리신 십자가 피의 공로를 잊지 않고,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하면서 살겠습니다’ 마음으로 고백하면서 찬양했다.
연습하며 올려 드리는 곡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신다고 하는데, 그날 하나님께 진실한 고백을 올려 드리며 내 영혼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마침 그날은 해외선교국 모임에서 내가 만난 예수님을 선포하는 복음스피치대회 날이었다. 스피치를 준비하는 내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막연하고 어려웠으나, 찬양하면서 은혜를 충만히 받으니 예수님의 피의 은혜를 가진 자로서 떨지 않고 능력 있게 복음을 전했다. 스피치를 전하면서 그날 깨달은 복음의 은혜가 내 마음에 자리 잡아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나를 찬양하는 사람으로 사용해 주시고 복음을 뜨겁게 만나도록 은혜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린다. 이 모든 일은 주님이 하셨다.
/정리 박채원 기자
| 김용순(헬몬찬양대, 알토)
위 글은 교회신문 <86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