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3-17 14:21:12 ]
수년 전, 시골에서 교회 다닐 때부터 중.고등부 교사로 일하며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지냈다. 올해 다시금 귀한 교사 직분을 주셔서 부족하지만 늘 감사하며 아이들을 섬기고 있다. 때때로 아직 주님을 모르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가슴 아프지만, 그래도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시선이 끊이지 않으시기에 나 또한 그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콩나물은 기르고, 나무는 키운다!’ 콩나물은 물을 주고 신경 써서 돌보지 않아도 키가 쑥쑥 자라지만, 나무는 때에 맞춰 병충해 예방, 가지치기, 영양분 공급 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잘 자라기도 하고, 반대로 다른 나무에 비해 시들어가거나 죽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모태부터 우리 교회에 다니는 학생들, 그러나 그들 안에 예배의 감동과 첫사랑을 잃어버리고 마치 콩나물처럼 길러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중등부 교사로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할 때가 많다.
대학 시절,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건강한 가정’을 정의해보라는 주제를 주신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칠판에 ‘분재로 키우지 않는 가정’이라 적어서 교수님의 주목을 받았다. 분재는 사람이 보기 좋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나무의 모양새를 내는 것을 말한다. 요즘은 얼마나 많은 부모가 자녀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키우고 있는가!
신앙생활도 예외는 아니다. 많은 부모가 자신의 방식대로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알려주길 원한다. 그들이 만난 하나님을 수많은 예배와 지속적인 기도회를 통해서 자녀도 만나길 원한다. 그러다가 아이의 신앙심이 점점 줄어든다 싶으면, 부모는 더욱 많은 예배와 금식 기도를 권면한다. 그것이 효과가 있으면 좋겠다. 누구의 분재(盆栽)인가. 부모님의 분재인가? 하나님의 분재인가? 하나님의 분재는 하나님 사랑의 관점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사랑으로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볼 때 그분의 분재를 볼 수 있다.
상상해보자. 여기 찢어진 청바지와 가죽 재킷을 입고, 머리는 노랗게 물을 들이고, 껌을 짝짝 씹으며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청소년이 있다. 우리는 판단한다. 아주 질이 안 좋은 불량한 청소년이라고. 그러나 그가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갔을 때 어머니가 바라보는 그 아이는 언제나 사랑하는 아들, 딸일 것이다.
지금 당신의 자녀가 성적이 떨어지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게임과 이성에 빠져서 신앙생활을 등한히 하고 있는가? 세상 사람이 당신의 자녀를 보며 ‘불량 청소년’이라고 생각할지라도 당신의 눈에는 어떻게 보이는가? 이것이 어쩌면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당신 자녀의 모습일 것이다.
부모는 그냥 그렇게 보이는 대로 사랑해 주면 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언젠가 그 자녀도 부모의 사랑을 통해 예수님을 만날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끝까지 기도한다면 주님이 당신의 자녀를 하나님의 분재로 만드실 것을 확실히 믿는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위 글은 교회신문 <23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