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라는 이름으로] 내 지식으로 할 수 없기에

등록날짜 [ 2011-06-21 15:06:02 ]

섬기니 오히려 내가 변하다

2001년 겨울 대학 졸업을 앞두고 우리 교회에 처음 왔다. 유아 특수교육을 전공했기 때문에 오자마자 참사랑부(현재 교회복지실 사랑부) 교사 직분을 맡았지만, 사실 ‘장애인 선교’에 관해서는 무지한 자가 장애인 학생을 섬기는 참사랑부 교사로 충성을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 나는 학교에서 배운 특수교육에 관한 지식에 의존해 아이들을 바라봤고, 그런 지식에 의존해 그들을 섬겼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내 모습은 주님 앞에 너무나 창피하고, 죄송하고, 부끄러운 것이지만, 당시 나는 내가 너무나도 잘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사랑부에서 4년 동안 충성한 후, 결국 내가 지닌 열정과 지식이 한계에 봉착했다. ‘지금 내가 섬기는 방법이 맞는가? 주님이 기뻐하시는가?’ 하는 의문을 품은 채 사랑부를 떠나 여전도회로 옮겨 충성했다.

사랑부를 떠난 지 4년 후인 2010년에 교회복지실로 다시 왔을 때, 나는 두 아들의 엄마가 됐다. 결혼 전에는 내가 배우고 익힌 지식으로 섬겼다면, 이제는 어미의 마음으로 장애인 아이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미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할 때도 고민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내가 맡은 학생은 중복장애(자폐, 정신지체, 언어장애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말도 못하고 들어도 반응이 없는, 그러면서 자기 고집은 세서 자기 뜻대로만 하려는…. 말씀을 전해도 듣는지 알 수 없고, 무엇을 물어봐도 반응이 없다. 무슨 생각으로 행동하고, 무슨 생각 하며 일주일을 지냈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치 벽을 향해 혼자서 열심히 예수를 전하고 찬양하며 기도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침에 중보기도 하러 교회에 오면 주님께 매달렸다. 처음엔 그 아이에게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주일, 예배를 드리는데 찬양 시간부터 내 눈에서 눈물이 계속 흘렀다. ‘내가 어떤 지식으로 어떤 마음으로 접근해도 아이의 육신은 반응이 없지만, 그 아이의 영혼은 예배 시간에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들으면서 이미 풍성해졌다’는 깨달음을 주셨다. 그 후에도 그 학생에게는 여전히 변화가 없었으나 내게 변화가 생겼다. 주님의 피 공로를 붙잡고, 그가 듣든지 안 듣든지 그의 귀에 내 입술을 대고 열심히 찬양하고 기도하며 말씀 전하는 길을 발견했다.

올해는 사랑부에서 신입교사들을 가르치는 교육 차장 직분을 맡았다. 처음 오는 교사들은 한결같이 “장애 아이에 대해 잘 모르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고 물어본다. 그러면 난 “기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영혼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난 오늘도 내 육신의 정욕과 현실에 맞서 싸워 이 말씀에 순종으로 나가려 기도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24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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