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3-02-26 09:25:22 ]
사춘기에 접어들어 방황하는 아들과 그 친구들 때문에 다른 청소년들에게도 관심이 생겼다. 그 중요한 청소년기에 은혜로운 교회학교에 다니면서도 변화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아이들이 무척 안타까웠다. 아이들이 방황하는 모습을 뻔히 보면서도 부모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 같은 부모가 많겠구나’ 싶어 부족하나마 아이들을 챙겨 주고 싶은 마음에 중등부 교사로 지원했다.
처음 교사로 임명받았을 때는 정말 긴장했다. 나 나름대로 비장한 각오는 했지만, 교사로서 아이들을 섬기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우리 아들이 어릴 때 자모실에서 함께 예배드리던 꼬맹이들이 어느덧 훌쩍 성장해 남자 티 풀풀 나는 청소년이 된 모습에 기특하기도 했지만, 그 반면에 ‘아이들이 나를 교사로서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하며 아이들 눈치도 많이 살폈다.
몸만 교회에 앉아 있을 뿐, 마음은 몽땅 휴대폰과 친구에게 뺏겨서 자기 관심사 외에는 무관심하고 웃지도 않던 아이들. 그 앞에서 긴장도 했지만,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서려고 노력했다.
지금까지 3년간 교사로 충성하는 동안, 크게 말썽부린 아이는 별로 없었다. 그래도 특히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다. 중.고등부 성회에 갔을 때, 우리 반 학생 한 명이 나를 피해 성전 2층 꼭대기로 숨어 버린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숨어도 주님께서 보게 하시니 내 눈에 어찌 그리 잘 뜨이던지 그 아이를 억지로 아래층으로 데리고 내려왔다.
교회에서도 예배를 사모하기는커녕 항상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며 말씀은 외면하던 그 아이를 중학교 3학년 때 맡아서 고등부에까지 함께 등반했다. 신앙생활에는 영 관심이 없어서 예배 시간마다 집중하게 하느라 씨름했는데, 신기하게도 그 학생이 정말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꾸준히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던 그 아이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동계성회에 참석해 큰 은혜를 받고 변했다. 지금은 직분을 맡아 친구들을 섬기고 있으며, 나랑은 종종 만나 주님 일을 의논하는 동역자로 성장했다. 하나님 말씀이 그 학생을 변화하게 했고, 나는 그저 주님의 사랑으로 기다렸을 뿐이다.
교사로서 내가 주는 사랑만큼 아이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은혜 받을 때 마음에 잔잔한 기쁨과 보람이 생긴다. 새 학기에 아이들을 처음 만나면 전화도 시큰둥하게 받고 친해지기가 어렵다. 하지만 챙겨 주고 관심을 보이는 만큼 잘 따라 준다. 관심을 쏟아붓는 만큼 학생들이 주님을 더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중요한 일을 주님께서 나 같은 사람에게 맡겨 주신 것이 감사할 뿐이다. 내가 아니어도 주님 일은 진행될 것인데, 주님께서는 혈기 많고 참을성 없는 내게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맡겨 주셔서 참고 인내하고, 끝까지 사랑하는 법을 조금씩 알게 하신다.
앞으로 아이들의 눈치보다는 주님의 눈치를 보는 교사, 아이들이 원하는 교사보다는 주님께서 시키시는 일에 순종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을 교사라는 이름으로 전하고 싶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동안 교사로서 충성하는 일은 내게 천직이다.
/서민선 교사(고등부)
위 글은 교회신문 <32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