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라는 이름으로] 예수의 피로 산 우리 아이들

등록날짜 [ 2015-05-11 14:25:52 ]

청년회에서 8년 동안 충성하면서 내 마음 한편에는 아이들을 향한 꿈이 항상 있었다. 다음 세대가 없으면 기독교의 미래도 없다는 담임목사님의 말씀에 공감하며 아이들이 영적으로 자라나는 일에 조금이나마 쓰임받고 싶었다. 그러던 중 아이들과 관련한 자격증 몇 개를 취득했고 더는 지체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이삭부(5학년) 교사에 지원했다. 올해 신입반 교사와 임원단 부서기 직분을 맡고 있다.
 
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보람되지만, 아이들 영혼을 영적으로 잡아 주어야 하는 교사로서 아이들과 마냥 즐겁게만 보낼 수는 없었다. 때로는 잘못한 점을 짚어 줘야 했고, 그럴 때면 아이들은 교사의 애정 어린 말을 알아듣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고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기도 했다. 주일 공과 시간이면 아이들을 집중하게 하고, 설교 시간에 들은 내용을 되짚어 주고 싶은 마음에 내 목소리는 커져만 갔다.

한번은 유독 한 아이가 집중하지 못하고 매주 공과를 방해하는 듯해 나도 모르게 그 아이에게 너 그러려면 저기 가 서 있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순간 아차!’ 싶었다. 아이에게 그렇게 말하는 내 마음에는 아이를 향한 사랑도, 걱정도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공과를 방해하는 것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발끈해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만 것이다. 말을 뱉기 무섭게 후회했지만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아이와 두 달 넘게 냉랭하게 지냈다. 내가 다가갈수록 아이는 자꾸만 멀어져 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먼저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이었고, 또 어떻게든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선생님이 널 위해 기도하고 있으며, 네가 미워서 혼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를 원해서 나무랐다고 만날 때마다 말해 주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

그런 마음이 통한 것일까. 아이는 점점 마음을 열어주었다. 이제는 먼저 나에게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아 주는 아이. 아이들을 통해 내 못난 모습을 발견하고, 부족한 교사인데도 나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더 바로 서야겠구나다짐한다.

아이들은 주님 앞에서 나를 일으켜 세워 주는 원동력이다. 보고 싶다며 전화를 하고, 토요일에는 어디서 만날지 먼저 묻는 아이들 연락을 받으면, 무너진 내 마음도 다시 정신 차리자라는 다짐으로 바뀐다. 특히 불신자 가정의 아이들을 많이 맡았기에 내가 아니면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해 줄 사람이 없다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요즘은 아이들과 기초 양육 다지기를 한다. ‘설교 시간에 아멘을 해야 하는 이유’ ‘주여 삼창에 담긴 뜻’ ‘마귀가 하는 일’ ‘회개하는 방법’ ‘예수님의 핏값인 나 자신을 주제로 기초적인 내용이지만 아이들에게 반복적으로 이야기해 주면서 머리로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깨닫고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를 전한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영적인 말씀과 기초가 그들의 심령 가운데 뿌리 내리길 바란다. 영적인 생명이 바탕이 되어 영육 간 멋쟁이가 되길 기도하고, 나도 주님 앞에 더 무릎 꿇어 기도해야겠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이 도우신다면 그 무엇이든 인도해 주시리라 믿으므로. 천하보다 귀한 예수의 핏방울인 아이들을 맡게 해 주신 우리 주님께 감사하다.


/전보연 교사

이삭부

위 글은 교회신문 <43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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