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라는 이름으로] 교사가 먼저 살아야 학생이 살아납니다

등록날짜 [ 2017-09-20 07:45:54 ]

올 초엔 학생들 영적 상태가 처참했지만
쉬지 않고 기도하자 부흥 열매 많이 맺어


고등부 교사 지원서를 냈다. 나 자신이 고등학생 때 연세중앙교회에서 은혜받고 거듭났기에 과거의 나처럼 방황하는 10대들에게 예수님이 십자가 보혈로 죄에서, 저주에서, 지옥에서 구원하신 은혜를 전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교회학교 교사 초년생의 뜨거운 열정과 부푼 기대와는 달리 담임한 학생들과 만났을 때 충격받았다. 회계연도가 바뀐 후 첫 고등부 예배시간, 설레며 내가 맡은 반 아이 열두 명을 기다렸다.

그런데 예배 시작 시간을 훌쩍 넘겼는데도 모인 수는 다섯 명뿐. 나머지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예배를 드리는 아이들도 예배시간에 스마트폰을 만지거나 졸고 있었다. 오지 않은 학생들에게 문자를 남겨 놓아도 답신이 없었다. 예배가 끝날 무렵에야 나머지 학생들이 예배실로 터벅터벅 들어왔다. 공과 모임 시간에도 학생들은 무덤덤할 뿐. 가슴이 꽉 막힌 듯했다.

‘내가 지나치게 기대했나?’ 내 눈에 비친 반 아이들의 영적 상태는 바닥을 쳤다. 천국을 간절히 소망하지도, 세상을 이기려고 몸부림치지도 않았다. 마귀에게 속아 죄짓고 지옥 가면 안 된다는 간절함은 누구에게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도 초년 교사의 믿음의 의기만은 꺾이지 않았다. ‘저 아이들의 영혼을 반드시 살려 내야 한다.’ 거룩한 부담만 자꾸 생겼다.

첫 모임 이후 내 힘으로는 아이들을 바꿀 수 없음을 인정하고 기도에 전념했다.

‘교사가 살아야 학생이 산다.’

고등부 교사가 된 후 계속 붙들고 있는 다짐이다. 영적 소경이 영혼을 맡는다면, 그 영혼들을 지옥에 끌고 가지 않겠는가? 내가 지옥 갈 신세인 채로 학생들의 영혼을 맡을 수는 없었다.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낼 수 없다. 학생들에게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공급하는 좋은 나무가 되고 싶었다. 먼저 내 생활부터 깨어 근신하려 했다. 죽어 가는 학생들의 영혼을 눈앞에 두고 살리지 못하는 ‘죽은 교사’가 되기는 싫었다. ‘주님, 우리 반 아이들을 살려 주세요!’ 늘 아이들을 생각하며 기도했다.
주일 공과 시간에도 최대한 열정을 다해 하나님 말씀을 전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 갖고 매일 부르짖어 하나님께 기도했다. 내가 권면한다고 해서 바뀔 아이들이 아니기에 오직 성령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교사인 내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아이들을 회개시키실 것이라고 믿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성령이 지금도 믿음의 기도에 일하시기에 기도로만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역시 하나님은 낙망치 않는 기도에 응답하셨다. 도저히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학생들이 어느 날부터 은혜받더니 천국을 사모하며 신앙생활을 했다. 이제는 우리 반에 기도하는 학생 수가 많아졌다. 전도도 왕성하게 해 부흥했다. 이 모든 일은 주님이 하셨다.

교사가 부르짖지 않으면 학생도 기도할 수 없다. 교사가 예배시간마다 선포되는 하나님 말씀에 은혜받지 못하면 학생도 예배를 사모할 수 없다. 교사가 전도에 전념하지 않으면 학생도 전도하지 않는다.

어느덧 사역 기간이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반 학생들에게 귀감이 되고, 맡은 영혼 반드시 살려 내는 교사로 올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다. 이 모든 일을 하신 주님께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린다.


/조성곤 교사(고등부)




 

위 글은 교회신문 <54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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