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2-08-31 00:07:43 ]
중·고등학생 시절 방황을 많이 했다. 나처럼 우리 학생들이 시간을 허송하지 않도록 섬기고 싶어 중등부 교사에 자원했으나, ‘세대 차이’라는 말처럼 학생들에게 살갑게 다가가도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 문은 굳게 닫혀 있어 막막하기만 했다.
다음 해 담당한 신입반 학생들은 꼭 나의 중학생 시절과 닮아 있었다. 비신자 가정인데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행히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공감대를 이뤘으나, 짓궂은 아이들을 통제하기란 쉽지 않았고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도 안타까웠다. 담배를 피운 다음 예배당에 들어오는 아이도 있었다.
또래 아이들처럼 신입반 학생들도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녔기에 주로 단체심방을 했다. 피자, 치킨 같은 요깃거리를 사줘야 만나주는 아이들. 한창 클 나이인 학생들 서너 명만 만나도 심방비가 적잖게 들었으나, 이렇게 물질을 써서라도 아이들이 교회에 나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만날 수만 있다면 바랄 게 없었다. 하지만 한 사람이 변화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시간이 흘러도 쉽게 변하지 않는 아이들 모습에 조금씩 허탈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기도하다 보니 성령님께서 내 마음에 세밀하게 감동하시는 바가 있었다. 영혼을 섬기는 데는 무엇보다 기도가 있어야 한다고! 돌아보니 그동안 기도한다고 했지만 한 명 한 명을 두고 세심하게 기도하지는 못했다. 학생들을 온전히 한 영혼으로 바라보지 못한 것이다. 또 기도하면서 ‘내가 이렇게 섬겼으니 학생들도 뭔가 달라지겠지’라는 마음이 사라지기도 했다. 예수께서도 아무런 대가 없이 십자가에 피 흘려 나를 죄에서 저주에서 사망에서 살려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학생들을 바꿔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저 이 아이들이 말씀 듣고 예수님을 만나도록 돕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 교사가 된 지 수년이 흐른 후에야 심령 깊이 깨달은 것 같다.
현지는 중학교 3학년 때 만난 학생이다. 매번 차량으로 데려오고 데려다주면서 살뜰히 섬겼으나 예배드릴 때도 심방할 때도 시큰둥한 표정으로 은혜를 받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 알 수 없었다. 고등부에 가서도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을지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몇 년이 흐른 후 고등부가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았는데 한 여학생이 무척 진실하게 찬양하고 있었다. 바로 현지였다. 워십도 적극적으로 했고, 현지와 어울리던 친구들 역시 성인이 되어 고등부 교사 직분을 맡고 있었다.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아이들이 예수를 만나고 값지게 쓰임받다니! 모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중등부에서 8년째 학생들을 섬기고 있다. 그동안 인생의 거센 파도가 내게 밀어닥쳤으나 여전히 예수 안에 있는 것은 ‘중등부’라는 공동체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치 않고 사랑해 주고 섬겨주는 중등부 부장님과 동료 교사들 덕분에 오늘도 어린 영혼들을 섬기고 있다. 나와 학생들을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하나님의 작품인 우리 중등부 아이들을 위해 계속 기도하리라. 이 모든 일을 하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린다.
/손미애 기자
김대철 교사(중등부)
위 글은 교회신문 <76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