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실 국팀장 천희자 집사

등록날짜 [ 2004-01-08 13:57:44 ]

매해 흰돌산 수양관 성회 때면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누가 끓이기에 국 맛이 이리 구수할까?”

씨라기, 미역, 콩나물 등 그저 소박한 야채들로 그 속 맛을 우려내는 기막힌 솜씨, 알고 보니 13년째 국 맛내는 충성을 해온 노장의 범상한 노하우가 스며 있었다는데… 주방에서 국 만드는 것밖에는 받은 은혜 표현할 길 없었다는 천희자 집사. 그녀가 이 방의 두 번째 주인공이다.

중풍 병으로 쓰러진 남편, 어린 아들아이, 살림 외에는 재주가 없는 주부 그래서 먹고 살 길 막막… 그런 이유로 그녀는 보험 설계사로 생계 전선에 뛰어 들었다. 그러던 중 친구 덕분에 들어선 망원동의 연세중앙교회! 하지만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보험설계사와 교회 충성 중 선택을 해야 했으니 말이다.

“제가 저희 집안에선 신앙의 개척자지요. 그래서 은혜를 담뿍 부어 주셨는지 교회 문턱을 넘자마자 마음이 평안해졌어요. 특히 위로는 하나님이 계시듯 집의 머리는 남편이니 가정의 질서를 지키라는 담임 목사님 말씀이 가슴을 찔렀지요. 당시 경제문제로 남편과 다툼이 많았는데 굉장히 회개했어요. 교회 일 하고 싶어서 주방으로 들어갔는데 일이 무척 많았지요. 그 때문에 보험일은 계속하기 어려웠죠.” 마침내 선택 한 것은 교회 주방 충성! 그렇다면 생계는 어떻게 꾸려갔을까? “쓰러졌던 남편의 몸이 다행히 금방 회복돼서 일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지요. 그런데 돈을 벌 줄 알았던 제가 교회 일만 하고 있으니깐 저를 무척 미워했어요. 당시엔 믿음도 없었던 사람이니…”

그때 일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것 같기에 그냥 넘어가려는 기자에게 그녀는 한 마디 덧붙였다.

“저를 미워하고 구박했지만 남편은 담임 목사님 욕은 절대 안 했어요. 참으로 감사한 일이죠.”

아무튼 이렇게 시작된 주방과의 인연이 햇수로 13년째. 왜 그 세월 동안 주방 일만 고집했을까?

“교회 다닌 지 4년째 되는 해에 집사 직분도 받고 성령의 임재하심을 경험했지요. 그리고 성도님들 따라 전도를 나갔어요. 그런데 마음속에서 왠지 열정이 안 일어났고 좌절감과 무력감만 느꼈어요. 그때 알았지요. 내 달란트는 주방 일인 것을. 왜냐하면 주방 충성을 하면 기쁘고 즐겁고 힘이 펄펄 나거든요. 재미도 있고 말이에요.”

남들은 한 번만 하고 나면 다시는 근처에는 얼씬 안 한다는 그 고된 일, 여름 성회 때면 더위 탓에 온 몸이 땀띠로 뒤덮인다는 주방 일이 재미있다니 개인의 성품을 100% 쓰신다는 하나님의 방법이 여실히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면 국 끓이는 것만을 전담해온 것은 또 무슨 연유에서 일까?

“제 성격에 그게 잘 맞아요. 다른 복잡한 일에 비해 국은 재료를 붓고 간만 맞추면 되니깐 간단해요. 또 제 신체조건도 잘 맞아요. 국 만드는 데 가장 어려운 것은 수천 명이 먹을 대량의 국물을 휘젓는건데 저는 팔 힘이 좋아서 잘 하거든요. 그것도 감사하죠.”

국 끓이는데 맞는 신체조건에도 감사하는 그녀를 보며 “믿음은 훈련을 통해서 성장한다는데 이미 타고난 그릇의 크기도 있구나” 하는 나름의 결론을 내려 본다.

“교회 주방에서는 주일날 중식을 만들 충성자들에게 국 재료 챙겨주는 일만 합니다. 제가 직접 음식을 만드는 때는 수양관 성회 때죠. 새벽 5시부터 저녁 9시까지 쉴 틈 없이 주방 일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예배 참석을 제대로 못해요. 하지만 밤 집회만은 들어갑니다. 하루 중 단 한 번의 예배라서 정신을 더욱 바짝 차리죠. 그래서인지 은혜를 많이 받아요. 또 충성하는 중에 받는 은혜도 굉장하지요. 땀을 흘린 사람만이 그것을 알 수 있답니다. 일을 하다 보면 감사하는 마음이 계속 커지고 그래서 신앙도 성장할 수 있어요.”

그런 그녀는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 또한 만만치 않았다.



“아무 재주 없는 저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신앙 성장을 해서 각 교회 목사님들을 수종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저 감사할 뿐이지요. 이런 천직을 찾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짧지 않은 시간을 충성으로 보내며 그녀는 나름의 복도 많이 받았단다.

“교회를 다니기 전엔 병치레만 하던 제가 건강해졌고, 남편도 제 일을 잘 도와주지요. 아들애도 대학에서 성실하게 공부하고요. 무엇보다도 제게 영생을 허락하셨는데 더 이상 큰 복이 무어겠어요?”

이처럼 가난한 마음의 그녀도 주방일의 노장답게 원칙이 분명했다.

“성회 때 충성을 한 번 부탁했는데 거절 한 사람은 다시는 부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느 때 또 마음이 변해서 주방 분위기를 흐릴지 몰라요. 주방일이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데는 순종이 최고거든요.”

아무리 기분 나쁜 일에도 별 표현 없이 지나갈 정도로 진득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는 그녀였지만 원칙을 말할 때만큼은 엄한 표정이 얼굴을 덮는다.

세수를 막 마친 듯한 상큼한 향수 샤넬 알뤼르옴므 향내는 없다. 대신 그녀의 체취 속에서는 반찬과 땀이 뒤섞인 충성의 냄새가 묻어난다. 그렇기에 천희자 집사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자의 마음은 은혜로 충만해졌다. 인터뷰를 마치며 기자는 주부의 근성을 발휘하여 살짝 물었다.

“국을 맛있게 끓이는 비결 좀 알려 주세요?”
“별 것 없어요. 국 끓이면서 기도하죠. 성도들이 맛있게 먹게 해달라고…”

기자가 궁금해 하던 국 맛의 비결은 알고 보니 기도 양념! 그녀다운 비법이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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