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을 갖게 되신 배경과 목회의 길을 걷게 되신 동기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어릴 적부터 침례교단 가정에서 자란 데다 할머님이 침례교 전신인 동아 기독교의 여전도사님이셨는데 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고 중학교 1학년 때, 침례교단의 목사가 될 것이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 때 이왕 할 바에 교수와 목회를 골고루 한다고 작정했지요.
▶ 사모님을 어떻게 만나셨나요?
▷ 집 사람(윤 성매 사모)의 나이 19세, 내 나이 22세 때 결혼했습니다. 집사람은 방앗간 집 딸로 부잣집이었고 혼자 신앙생활 하던 중에 처가 쪽 온 가족이 반대하는 결혼을 아내와 내가 한 뜻이 되어 결국엔 성사되었습니다. 우리가 결혼할 당시에 나는 군대도 가지 않았고 대학도 진학하지 않았고 유학도 안 한 상황이었어요. 철 들자마자 결혼부터 한 거죠. 어디 처음 에덴 동산에 결혼 문화만 있었지 군 문화, 학군 문화가 있었습니까?
▶ 자녀를 키울 때 강조하셨던 교훈은 무엇입니까?
▷ 자녀들은 모두 2남 2녀입니다. 맏딸은 침례교 안수 집사 김존록(영등포 침례교회)의 부인이고, 맏아들 권 순태 목사는 신학 박사로 지금 독일 라이프찌히에서 선교 목회 중입니다. 둘째 딸 권 소영은 푸른 마을 침례교회 집사이며, 그녀의 남편은 회사원, 막내 권순구는 대전 침례교회 집사로서 문학박사이며 대학에 출강하고 있습니다. 자녀 교육은 자율주의적으로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자녀에게 주신 성품과 탤런트를 부모의 입장과 생각으로 개조시키려 하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만드신 자녀의 기질과 성향대로 성장하도록 했습니다. 큰 아들 권순태 목사에게도 목회해야 한다고 소명을 강요한 적이 없어요. 여러분들, 제발 부탁이니 자녀들이 주 안에서 자연스럽게 자랄 수 있도록 하세요! 하나님이 키우십니다.
▶ 생에 가장 보람을 느끼셨던 부분과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 있으시다면?
▷ 예수를 믿되 성경 전체의 의미를 한 눈으로 훑어볼 수 있게 이해된 것이 매 순간 순간 기뻤고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가 저절로 나오는 순간,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는 매 순간이 기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큰 기쁨은 손자들이 출산될 때였습니다. 지금 여섯 명의 손자 손녀들이 있고 어떤 손녀들은 쌍둥이로 출산 대기 중이예요.
가장 힘들었던 일은 진실이 오해될 때입니다. 내 생각을 타인이 자기 멋대로 해석해서 처리하는 경우이지요. 그 때는 속으로 ‘어느 집의 애견이 짓고 있니?’ 했어요. 예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내 맘 아시지’하고 응대하지 않는게 결국 이기는 길이었습니다.
▶ 지금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시며 연세중앙교회에 오신 후 활동에 어떤 변화가 있으신지요?
▷ 지금도 계속해서 개교회 집회라든지, 각종 세미나에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나의 강의와 설교와 집회의 주제는 변함없이 ‘교회란 무엇인가?’ 그리고 ‘오이코노미아’란 하나님의 ‘집안 살림’이야기라는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연세중앙교회를 배경으로 힘있게 선포하지요. 교회는 이러이러한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하라. “당신들이 연세중앙교회를 알아요?” 하면서 유머스럽게 시작하는 강의도 종종하구요.
▶ 평신도 성경대학 강의하실 때 애로 사항이나 각별히 느끼신 점이 있으시다면?
▷ 신학교에서 강의했던 것과 같은 내용을 강의합니다. 아무 애로 사항 없어요. 더 쉽게 강의합니다. 강의할 때 신명이 나는 것은 성경대학생들이 “아멘!” 하고 화답해주기 때문이예요. 신학교에서는 그런 소리 듣기 어렵거든요. 하지만 나는 가끔 그런 소리 듣고 신학교 강의했어요. 제 자랑인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기립 박수도 받았지요.
▶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이 기회에 말씀해주세요.
▷ 회개는 짧게(short repentance), 감사는 길게(long thanks) 하자고 말하고 싶어요. 구원받은 자의 특징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이니까 우리 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배런스를 잘 맞추어서 항상 얼굴이 환하게 밝은 웃음으로 생활하고 밝은 인상을 전달해 줍시다.
▶ 목사님의 인생관에 대해 한 말씀해주세요.
▷ 간단히 말하면 ‘주 안에서 기뻐하고 자유하라!’는 거지요. 내 호(號)가 수류(水流)인데 물이 흘러가다는 뜻입니다. 그게 진리요, 자연이기 때문입니다.
▶ 윤석전 목사님에 대한 소위 이단성 오해 문제에 대하여 3년간 지내오시면서 느낀 점은?
▷ 우선 이단이라면 이단이지 이단성(異端性)이란 말 자체가 우습게 느껴집니다.
이단성이란 저들이 이단이라 할 수도 없고 아니라 할 수도 없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 말은 결국 깊이 따지고 들어가보면 아무런 이단적인 색채가 없다는 말입니다.
나는 그동안 학문과 목회를 겸하여 사역한 사람으로 감히 말하건데 “윤석전 목사님 이단 아니다”라고 외칩니다. 저들이 말하는 바 윤 목사님 목회 초년기에 불붙어 터트렸던 어떤 언어구사가 혹 귀에 거슬렸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보는 윤석전 목사님은 우선 신학 사상면에서 절대 보수 정통 성경적이고, 설교 자체가 복음적이고 목회적인 것임을 외칩니다. 아직도 오해하고 계시는 분이 계시다면 나는 이렇게 권하고 싶습니다. “와서 들어보십시오.” “교회현장에 와 보십시오.” “당신들의 목회도 윤석전 목사님의 목회처럼 되고 싶지 않나요?”
윤 목사님의 목회는 초 교과서적입니다. 축구팀이 코치에게 축구 훈련을 받을 때 교과서적 기본 원칙을 배우지만 막상 경기장에 가서는 골을 넣어야 합니다. “골은 못 넣었지만 축구경기는 교과서식으로 했습니다.” 아무 소용없는 말입니다. 교과서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고 그 위에서 순발력있게 골을 터트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궁동 성전 이전 계획은 교단적 차원에서 하고 있습니다. 지금 노량진 성전을 확장하면 되지만 아직은 침례교단 자체를 가볍게 보는 눈들을 고치기 위해 서울에다 상징적인 의미의 대형교회, 대형성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내심의 애교단적인 심정을 제발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윤석전 목사의 일거수일투족 언어 하나하나를 검증(?)하다시피 예의검토하지만 그 분의 특유한 은사로 돌리지, 절대 이상한 것으로는 여기지 않습니다.
▶ 목사님께서 보시는 윤석전 목사님의 장단점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단점은 건강을 생각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큰 동작, 그 큰소리, 그 큰 활동에는 육체가 무척 고달플 것 같습니다. 본인은 괜찮다고 하니 옆에서 보는 이는 “글쎄요” 하는 약한 소리가 나옵니다. 그리고 너무 완벽주의자 같아요. 나도 목회해보았지만 교인들이 그만하면 잘 한 것으로 감격할 일인데 윤 목사님은 “아직 아닙니다. 더 더!”하는 데는 정말 할말을 잃었다고나 할까?(!) 단점이 나타나면 그 땐 말할거요.
장점! 그것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저분의 목회를 보고 이런 생각을 했어요. 시중에 “사랑은 아무나 하나?” 라는 우스운 노래가 떠돌아다니는데(윤 목사님은 이런 예화까지 싫어할 정도이지만) “윤목사님의 목회는 아무나 하나?”라는 가사바꿈이 나올 정도입니다. 기도, 열심, 교회사랑, 추진력, 리더십!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혹 이에 못미치는 자들이 말하기를 “당신이나 그러지요” 라고 하지만, 윤 목사님은 되받아 이르기를 “당신들도 그럴 수 있다”고 외치는 게 실천목회연구원의 사상 아닙니까? 그래서 나는 윤 목사님에게 사석에서 이렇게 타이틀을 주었습니다. 윤 목사님은 하늘에서 내려보낸 ‘천국기능보유자 제 1호’라구요. 천국기능보유자 제 1호로서 그것이 곧 천국무형문화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기능 보유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지요. 타이틀에 걸맞게 교회를 키우려 하고, 그런 타이틀 보유자 후배를 많이 키우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 그 분의 장점인가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건강에 유의하세요!
위 글은 교회신문 <4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