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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교회 요람 같은 데를 보면 남편의 이름은 있지만, 굵은 글씨로 가정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아내의 이름이 적혀 있는 가정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남편이 교회에 등록하지 않은 가정으로 ‘짝믿음 가정'이라 한다. 이런 짝믿음 가정의 아내들의 눈에는 부부가 함께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가정이 곧 선망의 대상이 된다. 또한 짝믿음 아내들은 이 때문에 때로는 좌절하기도 한다. 이러한 가정의 회복이 곧 구원의 열매라고 할 수 있다. 그 아름다운 구원의 열매로 풍성한 안상선·김외현 집사의 가정을 찾아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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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의 자리를 지켜온 부부
충성의 자리를 성실하게 지켜온 안상선·김외현 집사. 온 가족이 함께 신앙생활 하는 것도 짝믿음 성도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텐데, 남편은 고등부 부장으로, 아내는 연합여전도회장으로 충성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복음 안에서 ‘행복한 가정’이라 하기에 충분하다.
안상선 집사는 1995년 연세중앙교회 등록 이후, 기관 임원, 기관장, 연합남전도회 임원, 심방실, 영상실, 새신자실 등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히 충성해 왔다. 지난 2004년부터 고등부 부장을 맡고 있으며, 실업인 선교회에서도 충성하고 있다.
“너무나도 심한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그 성격조차도 주님께서 바꿔서 쓰심을 느끼며, 어떤 모양으로든 쓰임받을 수 있다는 데 감사할 뿐입니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안상선 집사는 위성방송 관련 사업을 하고 있지만, 은혜받고 그의 삶이 주님 안에서 확실히 변화되었다. 이제는 사업은 그야말로 부업이고 충성이 본업이 되었다는 게 아내 김외현 집사의 귀띔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이중생활(?)을 하는 안 집사는 전도에 대한 열정도 남다르다. 일을 하다가도 복음을 한번 전하기 시작하면 만사를 제치고 일도 못하는 경우도 태반일 정도란다.
흰돌산수양관 집회로 변화돼
이 부부가 이만큼 신앙생활에 올인 할 수 있었던 계기는 다름 아닌 흰돌산수양관 집회였다. 1993년 김외현 집사가 먼저 윤석전 목사님이 인도하는 시내산 기도원 집회에서 은혜 받고 영적으로 충만한 경험을 했다.
그 후, 꾸준히 신앙생활은 해왔지만 그야말로 ‘선데이 신자’에 불과했던 남편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그렇게 가정적이고 가족들과 함께 여행하기를 즐겨했던 안상선 집사는 아내의 교회로의 외도(?)가 달갑지 않았다. 갈등의 시간을 무릎으로 견디며 김외현 집사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믿고 흰돌산수양관으로 남편을 인도했다. 텐트 안에서 나오지 않던 안상선 집사가 마지막날 집회에 참석해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주 금요철야예배를 혼자 드리며 방언의 은사도 받고 신실한 신앙생활을 결단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복음으로 가정을 회복시킨 김외현 집사의 충성은 약한 체질도 강하게 만들어졌고, 어느새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큼 건강해졌다.
비전을 심어주는 리더로
은지, 나영 두 딸도 다 성장해 더 자유롭게 충성한다는 이들 부부는 어린 자녀들을 키우는 부모들에게 자녀들은 오직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르치는 그런 부모가 되기를 권면하고 싶단다.
자녀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김외현 집사는 신앙생활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교회가 우선이 되다보니 많은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성장하게 해주신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앞으로 좋은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 건강하게 신앙생활 하는 것이 이들 부부의 자녀에 대한 기도제목이다. 또한 안상선 집사는 고등부부장으로서 이제는 먼저 교회학교 학생들에게 신앙은 물론 공부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주님 안에서 큰 비전을 심어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땅의 모든 꿈나무들이 록펠러 가문의 가훈에서처럼 하나님이 인생의 최고가 되고 기준이 되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7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