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06-07-03 13:46:57 ]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성가대
지난 3월 교회설립 20주년 축하 문화공연행사로 개최한 ‘성악가의 밤’에 정 교수는 로마 유학시절에 알게 된 이세이 교수 추천으로 참가하여 ‘생명의 양식’외 1곡을 찬양하였다. 그 후 생명이 넘치고 성령충만한 윤석전 목사 설교에 은혜를 받아 본 교회에 등록한 후부터 윤 목사의 외부 성회와 본 교회 예배에서 하나님을 향한 그의 진실한 찬양은 온 성도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제 그는 청년회 성가대 지휘자의 직분을 받아 주일 청년회 예배 때마다 뿔이 달린 황소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보다 더 값진 찬양을 청년회 성가대와 하나 되어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있다. “성가대원들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은혜를 받아 그들과 함께 눈물 흘리며 기도한다.”는 그는 사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여러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요청 받았지만 다 거절하였다. “저는 하나님 은혜를 절실하게 기도로 구하지 않고 그냥 악보대로 연습해서 주일마다 찬양하는 믿음 없는 성가대에서 지휘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가대원들을 연습시킬 때에는 아주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 지적하고 가르치지만, 주일 예배에서 찬양할 때는 모든 것을 다 잊고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만 감사하며 진실하게 찬양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성악가가 되게 하셨다
신앙의 가정에서 자란 그는 어렸을 때부터 바이올린 레슨을 받아 음악적 재능을 키우며 성장하여 성악과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그는 성악 공부를 등한히 하였고 군대에 가서는 제대 후 다른 대학에 가려고 공부할 준비를 하였다. 그때였다. 그는 기도를 하다 ‘태초부터 찬양을 받으려고 너를 택하였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그 후 그는 하나님께서 성악가가 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군 제대 후에 복학하여 성악공부를 열심히 하고 대학 졸업 후 로마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 중간에 한국에 잠시 들어온 그는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며 교회 청소로부터 교회 모든 행사를 도맡아 하였고, 3부 찬양단을 이끌며 주일에는 국수로 나오는 점심조차 먹을 시간이 없을 만큼 충성을 다하였고, 통성기도를 할 때는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했다.
테너가 되어 돌아오다
결국 그는 성악가에게 가장 치명적인 성대에 이상이 와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나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이러시는 것이다’라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변치 않았다. 1년 반 동안 그렇게 교회에서 충성을 다한 후에 로마로 돌아갔을 때 그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남자 성악가의 목소리는 테너, 바리톤, 베이스로 크게 구분됩니다. 저는 그전에는 바리톤이었죠. 그런데 로마로 돌아와 보니 목소리가 트여 테너가 될 수 있었습니다. 모두 하나님 은혜죠.” 변치 않는 그의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 그는 테너 성악가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왔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충성
그는 교회에서 성탄절이나 부활절에 성가대 칸타타를 하면서도 중간 중간에 성극양식을 도입하여 새로운 형식의 공연과 찬양을 기획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우리 교회에서 공연하는 문화행사에 아주 관심이 많다. 그는 자신의 비전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면 언제든지 그만 둘 수 있다며 “늘 겸손하게 기도하면서 맡겨진 성가대 지휘자로서의 충성과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리는 성악가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싶다”고 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8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