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공단소방파출소 민영기 집사

등록날짜 [ 2006-12-28 14:31:24 ]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도 모를 화재로부터 시민의 안전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민영기 집사는 평균 하루 3회 이상 화재진압 출동을 한다. 이렇게 힘든 소방파출소 업무를 마치고 쉬는 날에도 교회와 흰돌산수양관에서 충성자가 부족하다는 연락을 받으면 그는 한 걸음에 충성의 자리로 달려간다.


소방 업무와 충성 현장에서
소방파출소에 출근하여 근무 교대를 하면서부터 그의 업무가 시작된다. 화재 현장보고서 작성과 화재예방 조치를 위한 관내 시설물 점검, 소방차와 소방장비 일상 점검 등 그가 소방파출소에서 하는 일은 많다. 이런 업무 중에도 화재가 발생하면 지체 없이 화재진압을 위해 출동해야 한다. 화재진압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화재가 발생한 곳까지 빠른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면 더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가 있기 때문에 싸이렌 소리를 울리며 달려가지만 잘못 주차된 자동차들 때문에 화재현장 진입이 어려운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
이렇게 24시간의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그 다음날 교대 근무자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하면 힘들었던 하루 일과가 끝난다. 집으로 귀가 한 후에도 흰돌산수양관에서 진행되는 동계, 하계성회와 매주 월요일마다 실시되는 실천목회연구원에서 충성 인원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오면 그는 바로 충성의 현장으로 달려가 주차 관리를 한다.

주님 은혜로 화재현장에서 살아나
1991년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소방 공무원이 된 민집사는 1996년 충남방적 화재 당시의 일을 잊어버릴 수가 없다. 충남방적은 섬유공장이라 가연성 물질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형화재가 될 수밖에 없었고, 초기 화재진압이 안되어서 며칠 동안 화재진압을 해야 했다. 그때 그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소방 호스로 불을 끄다가 순간적으로 큰 소리를 듣고 후다닥 공장 밖으로 나왔는데, 그가 공장 밖으로 나와 얼마 되지 않아 화재로 약해진 건물 벽이 무너져 내렸다. 순간적인 직감이 그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남편을 위해 늘 기도를 해온 아내 덕분에 죽을 수 밖에 없었던 화재현장에서 살아났으니까요.”
그는 1992년 중매로 만난 아내와 결혼했고, 그때부터 결혼 전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교회를 다녔다. 처음에는 6개월 정도만 다니다가 슬며시 교회를 안 다니려고 했지만 다른 것은 다 양보하고 사는 아내가 신앙생활에서 만은 절대 양보가 없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어렵고 힘들게 하다가 1996년 대전에서 윤석전 목사의 부흥성회에 참석한 그는 윤목사의 성령충만한 설교를 통해 은혜를 받고 신앙생활의 자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는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여 연세중앙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였다.


소방관의 삶과 기도
2004년부터 대전에서 서울로 근무지를 옮겨 현재 그가 재직하고 있는 구로소방파출소에는 소장을 포함하여 27명이 격일제로 근무를 하고 있다. 소방파출소는 크게 화재진압팀과 응급구조팀으로 나뉘어 근무를 하는데 “하루 13명의 인원에서 휴가나 교육 그리고 행정요원을 빼고 나면 화재 진압과 응급 구조를 위해 현장에 출동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밖에 안 된다”고 한다. 이렇게 과중한 업무로 인해 모든 소방대원들이 3교대를 원하고 있지만 소방방재청 예산부족으로 부족한 인원을 충원해주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그는 묵묵히 16년 동안 소방관의 삶을 살아오고 있다. 이제는 고참 소방대원으로 화재현장에 가서는 제일 먼저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앞장을 서야 한다. 그동안 교육받고 경험한 대로 화재진압을 하지만 아무도 불의의 사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러기에 그는 늘 주님께 기도한다.
소방대원으로서의 삶과 주님께 충성하는 삶 모두 주님께 온전히 드리는 삶이 되게 해달라고....

위 글은 교회신문 <10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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