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도우시는 나의 하나님

등록날짜 [ 2009-06-30 13:19:26 ]

어느 해 겨울 구정 무렵 진눈깨비가 내리던 날, 인천에 살고 있는 무명의 바둑기사가 소나타 승용차를 몰고 남양주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가다가 마주오던 다이너스티 승용차와 충돌하게 되면서 소나타 승용차에 타고 있던 노인과 자신의 어린 두 딸이 죽고 만다. 경찰에서는 소나타 운전자를 가해자로 입건하게 된다. 소나타 운전자가 경찰조사를 거부하자 경찰에서는 이 사건을 그대로 검찰에 송치하게 된다. 이 사건은 그 검찰청의 유일한 초임의 여검사인 내게 배당이 되었다. 사건 서류에는 가해자가 쓴 한통의 편지가 있었는데 내용인즉 ‘오늘 살아 남았던 마지막 딸마저 화장시키고 돌아오는 길이다. 나는 신호위반을 하지 않았다. 나도 죽을까 했지만 꿈속에서 딸들이 나타났다. 단 한번만 재조사를 해주신다면 여한이 없겠다.’ 나는 사건을 재수사하기로 결정했다. 수사하는 동안, 밥을 먹을 때나 지하철을 탈 때나 늘 “하나님! 증거를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재수사를 하는 동안 많은 목격자를 만났고, 여러 가지 진술을 종합해 보니 이 사건에 기록된 가해자가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잘못 수사한 경찰관의 혐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다이너스티 차량 운전자를 체포하면서 압수수색하는 중 수첩이 하나 나왔다. 정신 없이 바쁜 중에도 여직원에게 원본을 복사 해두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조사과정에서 가해자는 압수된 자신의 수첩 일부 페이지를 찢어버리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만다. 복사해 놓은 원본을 대조해보니 당시 사건 담당 경찰관에게 가해자로 밝혀진 운전자가 뇌물을 준 혐의가 발견되어 경찰관도 함께 구속할 수가 있었다.
검사를 하면서 이렇게 하나님이 간섭하시는 사건은 하나님이 증거를 만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누군가를 도와주시려고 할 때 반드시 그 누군가를 도와줄 도구를 찾으신다. 그때마다 나는 하나님의 도구로 선택된 것 같다. 그리고 나를 쓰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사건임을 느낄 때 나는 온몸을 다해서 성심성의껏 책임을 다한다. 그러면 그 사건은 결국 해결이 된다.
검사실에 있다 보면 “검사님 맘대로 하세요! 법대로 하세요!”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나는 권력 있고 돈 많은 사람, 또 하나는 더 이상 오갈 데가 없는 사람, 두 부류다. 말은 같으나 내용은 전혀 다르다. 권력 있는 사람은 오만함과 거만함에서 나온 말이지만 더 이상 오갈 데가 없는 사람은 ‘검사님, 나 좀 한번만 봐 주세요!’라는 말로,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그 고독감과 인간적인 외로움은 내 가슴을 흔든다. 나는 이런 소리를 듣게 되면 그들보다 더 낮은 자세가 되어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최선을 다해 그들을 돕게 된다. 사람들의 말의 뜻을 알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래서 난 사랑받는 검사가 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모태신앙인 줄 알고 자랐다. 내가 대학에 합격하던 해, 부산으로 놀러갔다가 처음 만난 사촌언니로부터 나를 키워준 엄마는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두 살, 오빠가 세 살 때 친엄마는 셋째를 낳다가 돌아가셨고 그 태어난 아이도 백일 만에 죽었다는 것이다. 우리 두 남매는 교회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아버지 친구의 여동생 손에 맡겨졌고 나중에 그분과 아버지는 결혼을 하셨다는 것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그동안 살아온 나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졌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잠자리에서 항상 기도해 주셨다. “엄마는 널 지켜줄 수가 없지만 하나님은 항상 너를 지켜주신단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은 나를 지켜주시는 분이라 믿고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 그런 하나님께 나는 묻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정말 계세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그 아이들로부터 엄마를 데려가셨어요?” 묻고 또 물었다. 아이를 낳으면서 죽어가는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나를 괴롭히고 또 괴롭혔다.
나는 내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대학교 1학년을 시험만 치르고 수업은 땡땡이 치면서 1년간 교보문고에 다녔다. 그곳에서 모든 종교에 관한 서적들, 사주팔자에서부터 점쟁이에 관한 것까지 완전히 섭렵했다. 결론은 ‘귀신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다스리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잡신들이 나를 괴롭히지 않게 하려면 하나님과 일대일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비로소 나는 대학교로 돌아왔다.
그 후 서른이 될 때까지 고시공부를 하는 동안 많이 방황하며 힘들었다. 외로움과 무거운 짐이 나를 짓눌렀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이론을 많이 알아도 영적으로 느끼는 배고픔, 목마름을 채울 수가 없었다. 막바지 고시준비로 극도로 힘겨웠던 어느 날이었다. 꿈을 꿨는데 무섭게 빠른 속도로 내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내 겨드랑이를 잡아 주었고 교과서에서 봤던 에펠탑을 손으로 직접 만져보고 느끼며 이집트의 피라미드, 자유의 여신상 등 세계를 일주하며 한 바퀴 돌았다. 꿈을 깬 후 “아!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아시고 나를 위로해주시는구나! 정말 하나님은 계시는구나!” 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 확실해졌다. 그 때 알았다. 하나님은 공부를 많이 해서 이론으로 아는 것이 아니고 체험으로 알게 된다는 사실을.
이러한 체험을 하고 나니 그 후로는 방황하거나 힘들어 하는 일이 없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 후 고시에 합격했고 사법연수원에 들어갔다. 세월이 흘러도 어머님의 돌아가신 그 사건이 항상 나에게 어린이들에게 관심을 갖도록 마음을 주셨다. 하나님은 엄마를 데려가면서 또 다른 엄마를 내게 주셨고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고 엄마의 사랑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갖는 사랑이다. 엄마 없는 아이들도 엄마의 사랑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면 얼마든지 훌륭한 사람으로 클 수 있다.
몇 년 전 나는 검사를 사표 내고 수원시 권선구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했다. 선거운동 하면서 지치고 힘들 때마다 속으로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아버지 제 마음 다 내려놓사오니 아버지 마음대로 저를 움직여 주세요, 아버지의 조직을 움직여주세요” 모두 하나님께 맡겼다. 그리고 당선됐다.
마음속으로 나는 늘 나 자신에게 묻는다. 너에게 변하지 않는 게 무엇이냐. 그러면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대답이 있다. ‘군인이었던 내 아버지가 그랬듯이 목숨 걸고 지키려고 했던 대한민국 조국의 딸이라는 것,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국민의 봉사자라는 것, 배움에 있어서는 학생이며 사랑하는 어머니의 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내게 진짜로 변하진 않는 거 하나는 바로 나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도구라는 것이다.’

수원 온사랑교회 집사.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
전 수원지검 검사, 현 한나라당 국회의원 



정미경

위 글은 교회신문 <16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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