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오애숙 목사(찬양사역자)

등록날짜 [ 2009-10-06 14:36:08 ]

교통사고로 뇌사상태 ... 중보기도로 깨어나
인기가수 오방희 대신 찬양사역자로 새 출발


짙은 나무색 느낌이 나는 구성진 목소리로 온몸의 에너지를 끄집어내어 열창하는 오애숙 목사. 무엇이 오 목사의 찬양에서 그렇게도 끈끈한 은혜를 느끼게 하는 걸까?

죽음에서 삶으로 이어준 특별한 인연

1985년 2월 6일 새벽,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에서 대형사고가 일어났다. 울산 KBS 개국기념쇼에 참석 후 돌아오던 인기가수 오방희 양은 중상을 입었고, 함께 탔던 기자는 그 자리에서 참혹하게 즉사했다. 당시 병원에서는 치료가 잘 되어도 뇌사상태, 즉 식물인간을 면키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족과 성도들의 중보기도로 1주일만에 기적적으로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그후 지인을 통해 당시 집사였던 윤석전 목사에게 기도를 받게 되었고 정기적으로 성경공부도 했다.
“저는 모태신앙이었는데도 체험이 없어서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 했고, 성경책은 나와 거리가 먼 책이라고만 생각했어요. 몸만 교회에 다녔지 완전히 불신앙이었죠. 그런데 윤석전 목사님을 만남으로 인해 신앙의 눈을 뜨게 됐죠.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 분이란 걸 알게 됐고, 그 때부터 성경에 관심이 가고 소중함을 알게 되었죠. 그 내용이 너무도 광대하고 온 세상의 철학과 예술, 지식이 다 들어 있는 거예요. 윤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느끼게 된 거죠.”
병원에서는 식물인간이 될 거라고 했고, 수술할 부분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두개골이 엄청난 상처를 입었기에 왼쪽 머리 전체에 신경이 죽어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귀도 거의 떨어진 것을 붙여놓은 상태였고, 뼈가 다 튀어나왔던 손가락과 손목도 재수술을 해야 했다. 그러나 윤 목사를 만난 이후로 너무도 은혜에 갈급했던지라 붕대를 감은 채로 계속해서 윤 목사를 쫓아다녔다. 하나님께 제발 만나달라고 기도하면서 방언을 사모했더니 하나님이 방언을 주셨고, 방언을 받고 나니까 자신이 얼마나 죄인이고 잘못 살았는지를 깨닫게 됐다.
“바로 그 때부터 기도만 하면 눈물이 나고, 온 우주만물, 심지어 나무까지도 새롭게 보였어요. 나무까지도 반짝반짝 나뭇잎을 흔들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인생의 특권을 부여받은 나는 저 나무만도 못하게 살아왔구나. 사고 났을 때 죽었으면 지옥 갔을 텐데, 지옥신세 면하게 하시려고 사랑의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이렇게 말하는 오 목사의 눈에 감격의 눈물이 그득하다.

이젠 주님만 찬양하는 사역자로

윤 목사를 따라다니며 은혜 받기를 사모했을 뿐인데 신경이 죽어 하나하나 심어야 한다고 했던 머리털이 나기 시작했고, 수술을 해야 펴진다고 했던 손가락과 손목도 수술 없이 잘 펴지게 됐다. 병원에서는 식물인간을 면키 어렵다고 했지만 하나님이 다 치료해주셨다.
“제가 병원에 가서 하나님이 치유해주셨다고 말했더니 의사가 웃으면서 ‘이 사람이 이제야 믿음을 가졌구나’ 하는 눈으로 바라보더라고요. 사도 바울이 세상에서 가장 고상한 것이 예수 믿는 지식이라고 한 것처럼, 예수 안에서 믿음 갖는 것이 가장 고상한 것이고 생명을 얻는 것이라는 걸 그 때 깨달았어요. 예수 밖에서는 아무리 돈이 많고 엄청난 부귀영화가 있다 한들 산 소망이 없으니 그 영혼은 아무 희망이 없는 것이죠. 전도의 필요성이 여기에서 절실하게 느껴진답니다.”
은혜 받고 나자 그렇게 좋던 세상 유행가 노래 가사가 너무도 유치하게 들렸고, 그런 노래만 부르다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어찌 그분을 뵐 수 있겠는가 싶어 미련없이 가수를 그만둘 수 있었다. 주위 사람들의 권유도 있었지만 기도하던 중 하나님이 ‘준비한 만큼 쓰겠다’는 감동을 주셔서 신학교에 진학했고, 10여 년간 교회학교 사역을 했다. 그러나 세상에서 노래를 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하리라는 생각이 항상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하나님이 예비해주신 작업자를 만나 1집을 제작했고, 최근에는 2집을 제작하고 있다. 오 목사는 어느 교회, 어느 교파를 막론하고 간증과 말씀과 찬양으로 섬기고 있다. 기도할 골방 하나만 내주면 어디든 달려가서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증거한다는 그녀. 그래서 그녀가 부르는 ‘사명’이 그토록 애절하게 성도들의 가슴을 진한 눈물로 때리는 것일까.
“찬양은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찬양을 할 때면 오히려 제가 은혜를 받아요. 특히 음반을 제작하기 전 연습에 임하여 찬양을 하게 되는데 그 가운데 성령의 감동으로 은혜 받고 대성통곡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깨닫지 못했던 것에 대한 회개와 그리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분의 뜨거운 사랑, 그 사랑에 대한 감사. 하나님께서는 찬양을 통해 특별한 은혜를 주시는 거죠.”
인터뷰를 마치며 특별한 인연, 윤석전 목사님에 대한 소개를 부탁했다.
“제가 아는 윤 목사님은 예전에도 지금도 오직 하나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도를 양육하는 일을 목숨보다 큰 최고의 사명으로 여기시고 하나님께 머슴처럼 순종해 오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세워진 이 하나님의 교회가 눈에 보이는 증거가 아닐런지요.
몇십 년 전이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것이 있다면 아무리 피곤하여 지치고 힘들어도 표내지 않으시고 주님만 바라보고 사명 감당하시는 모습이에요. 그 모습 우리 모두 닮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이란, 인간을 이해하며 인간 중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소욕과 싸워야 하는 영적 싸움인데, 많은 믿는 자들이 싸우기보다는 세상에서 안일하고 편안하게 사는 것 자체를 축복으로 여기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목사님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늘 자신을 점검하면서 내 육신의 삶이 영혼의 때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타이틀, 내 영혼의 때를 위하여 만세!”

위 글은 교회신문 <16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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